[박이도의 문학산책] 茶兄 김현승의 신앙과 고독(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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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돌같이 단단하고 이슬같이 투명한 언어

올해는 다형 김현승(金顯承) 선생님이 타계하신지 49주기(週忌)가 되는 해이다. 내가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70년대 초반이었다. 우연히 찻집에서 뵙고 인사를 드린 것이다. 그 후 선생님과는 많은 사연이 이어졌다. 

다형의 시편에는 유난히 고독, 까마귀, 가을이라는 단어가 시적 주제나 대상이 된 작품이 많았다.

선생님께서는 별호(別號)를 茶兄으로 짓고 애용하셨다. 평소 커피를 좋아하시는 것은 문단에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어느 시기에 어떤 심기에서 다형이라는 별호를 사용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또 주변의 누군가가 지어 주신 것인지, 본인이 직접 지은 것인지도 궁금해졌다. 시인의 별호로서 우아하다. 

“나는 초․중반기까지 신앙과 이상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에서 시를 써 왔다. ~그러나 나의 나이 50대에 이르러, ~이러한 긍정적인 청교도 사상에는 큰 변혁이 일어났다. ~부모에게서 전습(傳襲)한 신앙에 대하여 ~회의를 일으키게 되고, 점점 부정적인 데로 기울어져 갔다”(‘나의 고독과 나의 시’에서)는 신앙고백이다.

시인으로서의 말년의 작시(作詩) 자세로는 자신의 신앙적 정체성에 대한 집요한 회의와 죽음에 대한 운명, 즉 현실의 삶과 사후의 영생에 관한 추구를 했다.

다형의 시편에는 차돌같이 단단하고 이슬같이 투명한 영혼의 숨결이 숨 쉬고 있다. 

가을의 기도

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홀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굽이치는 바다와 /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1956)

‘가을의 기도’는 고독의 의미, 죽음의 숙명성을 음미하는 작품이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에는 홀로 남은 허수아비의 형상이 들을 지키고 있다. 스산한 바람소리는 고독의 피리 소리가 아닌가. 그 외로움을 어머니의 음성으로 익힌 모국어(母國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사랑하게 하소서>, <홀로 있게 하소서>로 상승하는 자신의 심리상태가 정체성에의 회의(懷疑)에 빠져들고 있다. 다형의 ‘고독’을 <~절대고독 속에서 삶의 궁극적 경지에 다가가는 화자의 표상>(문현미 교수)이라고 촌평했다. ‘궁극적 경지’란 죽음의 경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다형의 시속에는 유난히 ‘고독’이나 ‘까마귀’ 같은 관념어가 사실적으로 등장한다. <모든 신들의 정의 앞엔/이 가느다란 창끝으로 거슬리고,>(견고한 고독)는 나약한 자의 고독을 거대한 신 앞에서, 신과의 대결 구도에서 회의와 절망의 까마귀를 바라본다. 시 속의 화자는 신의 절대의 초월성과 마주해 자신의 나약한 존재감을 확인해 보려고 한다. 

시집 <견고한 고독>에 수록한 ‘겨울 까마귀’에서는 까마귀를 ‘영혼의 새’로 비유한다. 이어 “참으로 아름다운 것과/홀로 남은 것은/가까와질 수도 있는,/言語는 본래/침묵으로부터 高貴하게 탄생한,”것이라고 암시하고 있다.

다형 선생의 시를 보고 <~기독교적 시정신에 바탕한 현대시의 서정성을 구축했다>(박두진 시인), <~신앙의 축복으로서의 고독의 사물화라는 새로운 경지의 개척자>(김윤식 평론가)라고 평가했다.

박이도 장로

<현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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