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행복한 선택  박래창 장로의  인생 이야기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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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인민대회당서 열린 부흥회와 교회의 리더십

오랜만에 만난 제자들과 교회학교 시절 추억

중국에서 부흥회 개최 제안 ‘소망교회의 도전’

서울 용산구청 옆의 한 식당에 모여서 보니 다들 50대 중반이 돼 있었다. 사장도 되고 아버지도 됐지만 아홉 살, 열두 살 때 이야기를 하면서 환하게 웃는 얼굴들은 모두 ‘아이들’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 명 한 명이 다 기억나지는 않았다. “저 누구누구인데 기억나세요?”, “그때 이런 일이 있었는데 기억나세요?” 이렇게 묻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심지어 미국에 살고 있는 아이까지 전화로 연결해서 바꿔주기도 했다. 아이들은 내게 “보고 싶었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앞으로도 이렇게 종종 모여요”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이후로도 몇 번 모임을 가졌고 2022년에도 서울 광화문에서 다 같이 모였다. 이날 부장판사, 감사원장을 지낸 뒤 종로구 국회의원이 된 최재형을 오랜만에 만났다. 재형이는 중학생 때 내 제자였는데 이 모임 소식을 듣고 깜짝 방문을 한 것이다.

비록 내가 일일이 다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잘 살아온 아이들이 대견하고 나를, 그리고 교회학교를 기억해 주어서 고맙고 신기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때 20대 후반에 지나지 않았으니 이번에 만난 아이들 나이의 절반에 불과했다. 그런 내가 그 시절 뭐 그리 좋은 선생님이었을까.

아마 아이들이 나를 좋게 기억해주는 것은, 내가 박래창이라는 개인으로 있었던 게 아니라 선배 교사들로부터 이어지는 신앙의 유산 아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때 우리에게는 훌륭한 선배님이 세 분 계셨다. 아내의 친척 어른이신 김성환 권사님, 연세대 교목을 오래 하신 김득렬 목사님의 사모님이신 김복신 권사님, 그리고 이대부속초등학교 교장이신 차재언 집사님이다.

나보다 20년은 연배가 높으셨지만 그런 분들이 내 또래 청년들과 함께 교사를 하셨다. 그분들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젊은 교사들도 따뜻하게 보살펴주셨다. 늘 밥도 사주고 어려움이 있으면 들어주고 도와주신 덕분에 우리도 열심히 살고 열심히 교사 직분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도 우리를 좋은 선생님으로 봐줄 수 있었을 것이다.

요즘 교회에는 이렇게 젊은 교사들을 품어주는 신앙의 선배들이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모시고 대접해줘야 할 높은 사람이 아니라 삶으로, 신앙으로 모범을 보이고 그들을 늘 감싸 안아주는 선배나 멘토로서의 역할을 하는 부장교사나 장로들이 얼마나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부흥회를?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나는 여러 가지 큰일들에 함께할 수 있었고, 분에 넘치게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했다.

소망교회는 성도 중에 각계각층의 전문가와 지도자들이 많기로 손꼽히는 교회다. 이런 ‘인적 네트워크’가 있으면 무슨 일을 하더라도 술술 풀릴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 네트워크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이 맘 놓고 들어 쓰실 수 있는 평범한 리더다. 많은 인재들이 힘을 모을 수 있도록 하는 리더십은 부담없는 소통을 통해 연결되는 상호 신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나같이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이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기가 오히려 쉬운 것이다.

1996년에 겪은 기막힌 사건이 있다. 중국 역사에서 전무후무할 만한 일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벌어진 것이다. 바로 그 인민대회당 단상에서 중국 정부 서열 50위 이상의 고위 관료, 각 성 대표, 당원 4천여 명을 모아놓고 곽선희 목사님이 설교를 하셨다.

일의 발단은 1995년 2월쯤, 정근모 과학기술처 장관으로부터 받은 제안이었다. 정근모 장관은 당시 과학기술처 장관직을 두 번째로 맡고 있었다.

“중국 장성급 고위층과 연결된 재미교포 선교사님이 있습니다. 그분이 중국 정부의 부처 중 한 곳과 접촉을 해서 베이징에서 3박 4일 동안 부흥회를 열기로 계약을 했다는군요.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장사하는 여성도님 몇 분이 중국 선교를 위해 몇 년 동안 기도하면서 모은 5만 달러로 계약금을 치렀다고 합니다. 중국 쪽에서 1만여 명의 인원을 모아주기로 했으니 우리는 400여 명을 인솔해가면 됩니다. 베이징에서 숙식하고 행사를 개최하는 비용으로 총 40만 달러를 지불하는 조건이라고 합니다.”

귀를 의심할 만한 이야기였다. 중국과 수교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양국 기관 간의 통신도 쉽지 않을 때였다. 그런데 부흥회라니? 의심이 갈 만했다. 다행히 이 자리에 갈 때 고려여행사 사장 유민철 소망교회 장로와 함께 갔다. 유 장로는 국제회의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전문가였다. 정 장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유 장로의 반응을 살폈다. 유 장로는 내게만 보이도록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어렵다는 사인이었다.

정 장관은 “여러 대형 교회들과 기독단체들에게 제안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면서 “모자라는 35만 달러를 마련하고 400명의 방중단을 꾸리는 일을 누군가 꼭 해줘야 하는데, 소망교회라면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로님들께서 곽 목사님께 말씀드려서 성사되도록 해주십시오”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선 유 장로와 나는 ‘목사님께서 이런 불확실한 일을 허락할 리가 없다’는 생각을 서로 확인한 뒤, 목사님께 일단 보고는 하되 거절하시면 이를 정중히 정 장관께 전달만 하면 되겠다고 가볍게 여겼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기도가 끝난 뒤 곽 목사님께 보고를 하니 선뜻 “한번 해보지요”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우리를 붙잡고 30분 동안 중국 선교 전략에 대해 설파하셨다.

박래창 장로

<소망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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