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도의 문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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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兄 김현승의 신앙과 고독(下) 

견고한 고독, 절대 신앙

김현승은 한국 시단에서 철학적 사유로 자신만의 독보적 세계를 구축한 특유의 시인이다. 개신교 목사의 모태 신앙인으로 자신이 믿는 신의 존재와 일대일의 대결구도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간다. 자신의 신앙을 두고 간단없이 제기되는 존재론적인 회의(懷疑)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의란 철학의 관점에서 인식의 확실성을 부인하고 진리의 절대성을 의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소외감을 ‘견고한 고독’ ‘절대고독’의 견고~, 절대~라는 접두사를 붙여 신에의 회의, 인간간의 부조리를 모국어로 풀어간 시인이다. 

절대신앙(絶對信仰)

당신의 불꽃 속으로/나의 눈송이가/뛰어 듭니다.//

당신의 불꽃은/나의 눈송이를/자취도 없이 품어줍니다.

다형의 절대신앙이란 완전한 항복을 뜻한다. 신께서 화자의 존재를 백퍼센트 받아 주신다는 신앙고백이다. 이같이 견고하고 고독했던 지금까지의 인간적 번뇌가 신의 품에 안기는 극적인 서사기가 된 것이다. 환언하면 회의하며 서성이던 자신의 믿음이 절대자이신 신 앞에 투항하는 극적 표현이다.

다형의 ‘가을의 기도’를 낭송하면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 날’이 연상된다.

릴케의 ‘가을 날’은 한국인에게도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애송시이다. 

가을 날(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 들판 위엔 바람을 놓아 주십시오.

마지막 열매들이 영글도록 명하시어, /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국의 따뜻한 날을 베푸시고, / 완성으로 이끄시어 무거운 포도송이에 / 마지막 단맛을 넣어 주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는 짓지 않습니다. / 지금 혼자인 사람은 오래도록 혼자로 남아서 / 깨어나,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 그러니까 나뭇잎 떨어져 뒹굴면 /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일 것입니다. (문현미 교수 역)

오래전부터 가을은 고독의 계절이라고 했다. 왜 가을이 고독해지는 계절인가?

가을이라는 계절, 자연의 시공에 나선 실존자들, 그 두 시인은 자신의 고독감을  자신의 모국어로 존재감을 보여준다. 자신의 혼이 담긴 모국어로 신에게 바치는 헌사(獻詞)이다. 신독(愼獨)했던 김현승과 신비주의자 릴케의 시편에는 성서의 비유들을 차용하기도 한다.

저녁 (라이너 마리아 릴케)

눈 덮인 조용한 전나무 숲을 지나 / 저녁이 멀리에서 다가온다. / 그리고는 차가운 볼을 창문에 대고 / 안에서 하는 말을 엿듣는다.

그러면 집은 저마다 고요에 잠긴다. / 생각에 묻히는 의자의 노인들. / 여왕이 되는 많은 어머니들. / 아이들도 장난을 하려 들지 않는다. / 하녀의 물레도 멎었다. / 밤이 안을 엿듣고, / 사람들은 밖으로 귀를 기울인다. (역자미상)

기도시집에 수록한 작품이다. 사위(四圍)가 어둠 속에 묻힌 밤, 눈이 내리는 숲속의 한 가정집의 서사록(敍事錄)이다. 가슴에 뭉클하게 와닿는 명상시가 되었다. ‘밤이 안을 엿듣고,/사람들은 밖으로 귀를 기울인다’는 설화같은 진실. 

박이도 장로

<현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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