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통한 삶과 믿음 이야기] 고난의 의미와 가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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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한 생애를 살아가는 동안에 수많은 고난을 겪는다. 무엇 때문일까. 보다 나은 인생을 이룩하기 위함이다. 그 삶은 굽이굽이마다 고비를 넘겨야 하는데 그 순간은 모질기만 하다. 이런 고난의 삶은 인생의 의미를 부여해 준다. 동물은 정신세계가 없기에 삶의 가치와 의의도 없고 고난을 승화시킬 리도 없다. 정신세계가 존재한 인간에게는 고난의 대가가 주어진다. 큰 그릇에게는 그 그릇을 채우려고 수난이 거듭된다. 성경에서 말하는 다윗왕이 그 한 예이다.   

사무엘상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새의 막내아들인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날 이후부터 여호와의 큰 능력이 그에게 임했다. 반면에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는 악령이 그를 사로잡음으로 번뇌하다가 전쟁에 죽게 되었다. 그리고 다윗은 유다의 왕이 되기까지 무수한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됐다.

다윗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한 블레셋 장군 골리앗과 싸우기 위해 그의 앞에 섰다. 그는 키가 여섯 규빗 한 뼘(274~335cm로 추정)인데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고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그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다. 그리고 그의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고, 창날은 뾰족한 철이며, 육백 세겔의 방패든 자 앞에 있었다. 이같이 거대한 체구에 완전무장을 했기에 철통같은 태세로 전쟁에 임한 그였다. 그런데도 다윗의 믿음은 담대했다. “할례를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했느냐?” 비록 손에 막대기와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골리앗 앞에 섰을지라도 그의 담대한 믿음은 하나님도 감동했을 것이다.     

다윗은 당시 양치는 소년이었다. 이 같은 전쟁에 참전한 바가 전혀 없었다. 다만 양을 지키기 위해 맹수에게 쏘아본 물맷돌 경험이었다. 그의 실력으로 골리앗의 미간 한 중앙을 물맷돌로 맞춰 쓰러뜨렸다. 그러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기에 바로 달려가 골리앗의 칼을 뽑아 그 목을 베어 승리로 이끌어 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 나갈 때 막대기를 끌고 갔다. 그때 골리앗은 “너는 나를 개로 여기느냐?”라고 물었다. 그 의도는 무얼까? ‘하찮은 것이 전쟁터가 어떠한 곳인지도 모르고 그런 모습으로 나왔느냐’고 상대방을 비웃은 말이다. 이같이 긴장감을 푼 골리앗의 모습을 다윗은 보고 기회를 놓칠세라 재빨리 물맷돌을 던져 승리로 이끌었던 것이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 여인들이 노래를 불렀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 이 노랫말은 그 수가 엄청난 차이였기에 왕위까지 불안했다. 그날 이후로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벽에 기대고 앉아 있는 그를 향해 창을 두 번이나 던졌으나 피했다. 그 뒤에도 계속 다윗을 죽이려고 군대를 동원해 추격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이처럼 다윗은 왕이 되기까지 그의 삶은 처절한 고난의 연속이었다.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사울을 두 차례나 살려줌은 하나님 말씀을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여호와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삼하 23:2). 다윗의 마지막 말이다. 오직 온갖 고난을 믿음으로 승화시켰기에 위대한 왕이 된 것이다.

하재준 장로

 중동교회 은퇴 

 수필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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