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회복] 떠날 시간이 가까이 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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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J W von Goethe,1749~1832)가 죽음의 침상에 누워 있었다. 괴테는 루터교 집안에 태어났으나 신앙을 버리고 비기독교인으로 평생을 살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벨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 < 파우스트> 등 명작을 남겼다. 위대한 문학가, 사상가였다. 그도 나이 들어 죽음이 찾아 왔을 때 “빛이 더 있어야겠다. 창문을 열어라.”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죽음으로 가는 길이 캄캄한 어둠이었다. 답답하고 헤어나기 어려운 어둠 속에 있었던 것 같다. 

유명한 가톨릭 여류 작가 박완서 선생이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그가 독백한 말이다. “죽음은 두려운 일이지만 사랑하는 내 아들이 먼저 갔던 길이다. 내 남편이 앞서 갔던 길이다. 나도 그 길에 들어가려고 한다.” 의과대학을 다니다가 불의의 사고로 떠난 아들의 죽음이 평생 동안 가슴에 한(恨)이 되어 잊지 못하고 살았다. 

또 다른 고백이다. “내 육신이 쇠해 눈을 감을 때 십자가 밝히 보여 주소서. 내 모든 슬픔 위로하시고 생명의 주여 함께 하소서.”  “내 영혼을 받아 주소서. 주님 손에 맡기나이다.” 죽음은 두렵고 힘든 일이다. 평안한 죽음, 천국에 들어가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죽으려면 회개가 먼저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 자신의 죄악과 허물에 대한 자백,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회개'(Repent)는 ‘다시 생각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는 마음의 변화를 가져 오게 된다. 이제껏 내가 생각했던 모든 것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내 삶과 모든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죄악된 인간의 사고(思考)와 철학으로 살아왔던 지난 날의 모든 것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회개한 영혼은 세상의 지혜와는 작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로 결심한 사람이다. 현대 철학을 계속 믿는 것은 소돔과 고모라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포기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파스칼(Pascal, 1623~1662)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면 세계 역사가 변했을지도 모른다” 등 유명한 말을 남겼다. 주요 저서에 <팡세(Pensees)>가 있다. 영적 묵상을 하면서 1천여 개의 얘기와 경구를 썼다. “이성의 최고 성공은 우리로 하여금 이성에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성에 한계가 있음을 깨달으면 하나님의 계시를 들을 준비가 된 것이다. 모든 고뇌와 수치와 혼란과 고난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는 책이 성경이라고 믿게 된다.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게 된다.

“회개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감정이다”라고 한다. 구원을 받고 새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억울하고 기가 막힌 일을 당했을 때라도 주님께서 하신 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은혜를 받고자 하면 내 욕심을 먼저 내려 놓아야 한다. 내 뜻을 주님 뜻보다 더 우선하지 말아야 한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느니라.” 나의 죄와 허물을 회개하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를 믿고 의지하면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실 것을 믿는다. 용서에 덧붙여서 칭의(稱義, Justification)가 주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취하시고 그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그의 의(義)를 우리에게 전가(轉嫁)해 주신다. 깨끗한 옷, 의로운 옷을 입혀 주신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 새 생명을 받는다. 손을 깨끗이 씻고 순결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다. 떠날 시간이 가까이 오기 전에 자신을 되돌아 보고 성찰하며 회개하는 심령은 아름답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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