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새로운 견해 : 죽음 속에서 일어나는 부활 <2>
이러한 모순을 몰트만은 다음과 같이 해결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결정된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는 인간의 죄와 죽음을 통해 파괴될 수 없다. 하나님이 인간에 대한 자신의 관계를 지속시키는 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결정된 인간의 운명은 폐기되거나 대체될 수 없으며, 사멸할 수도 없다. 하나님의 자녀 신분은 불멸한다. 한 인간의 전체적인 형태를 우리는 인간의 영이라고 부른다. 인간이 죽을 때, 그의 부분들의 총합은 붕괴하지만, 그의 전체성의 새로운 질(質)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존속한다. 왜냐하면 전체는 그의 부분들의 총합 이상의 것이고, 그러므로 부분들의 붕괴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명으로 영위한 형태는 ‘영원한 생명’이라고 부르는 생명의 형태로 변화된다.
그러므로 죽음 속에서 인간 전체가 폐기된다거나, 죽음 속에서 인간의 정체성이 중지된다고 말할 수 없다. 죽음은 인격 전체의 끝이 아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 앞에서 존속한다. 죽음은 인간의 생명 형태의 변형, 곧 인간 전체의 변형이다. 죽음을 통해 인간은 시간적으로 제한된 생명에서 불멸의 생명으로 변화되며, 제한된 존재에서 현재적인 존재로 변화된다. 죽음은 인간의 영을 시간적인 제한과 공간적인 제한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죽은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산다. 생명은 변화되며, 폐기되지 않는다.(Vita mutatur, non tollitur) 몰트만이 기대하는 희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한 희망이고, 그리스도를 다시 살린 성령의 능력을 통한 ‘죽은 자들의 부활’의 희망이다. 그런데 부활의 영은 이미 여기서 그리스도인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죽음 속에서도 소멸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으로 변형된다고 몰트만은 말한다.
하지만 몰트만도 가톨릭 신학자들이 주장해 온 ‘죽음 속의 부활’을 최근에 이르러서는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새로운 신학적 변화를 보여 주었다. 그가 지난 시절에 ‘죽음 속의 부활’을 거부했던 까닭은 그것이 그에게 개인주의적인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이르러 그는 자신의 견해를 완전히 수정했다. 왜냐하면 그는 지난 시절의 신학적 관점을 새롭게 바꾸었기 때문이다. 몰트만은 이제 현재로부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바라보지 않고, 미래로부터 개시된 현재를 바라본다. 영원한 생명을 향한 우리의 부활은 그리스도와의 사귐 안에서 이미 현존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리스도 안에서 감춰져 있는 미래의 생명을 이미 비추고 있다.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나누는 사귐이 배타적인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통치는 보편적인 것이다. 부활한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부활의 영의 힘은 인간과 우주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다. 살리는 영은 여기서 죽음 이전에 생명의 힘으로 경험되고 있으며, 저기서 죽음 안에서 온전한 생명으로 살리는 생명의 힘으로 경험될 것이다. 만약 죽은 자들이 이미 부활해 영원한 생명 안에서 깨어 있다면, 우리는 시간으로 인해 그들과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영원 안에서 우리 곁에 있다. 그들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며, 내 생각에 따르면 그들은 우리 위에서 깨어 있다.
몰트만은 그의 생애의 마지막 저서라고 말한 작은 책 『나는 영생을 믿는다』에서 “우리는 죽는 순간에 부활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비록 바울은 그리스도가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로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전 15:20)라고 말하지만, 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의 부활에는 차이가 있다. 예수는 그의 무덤에서 육체로 부활했다 그의 육체는 삼일이 되어도 “부패하지 않았다.” 이것은 제자들에게 구약성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예수는 부활의 영에 의해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에 의해 ‘변모된’ 몸으로 여인들과 제자들에게 육체적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예수의 죽은 몸의 상처를 보고 예수를 다시 알아보았다.
하지만 우리의 부활은 이것과는 다르다. 우리는 우리의 무덤에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순간에 부활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검은 빨리 부패하거나, 태워져도 남은 재는 땅속에서 금방 해체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검은 우리의 무덤에서 부활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영위했던 모든 생명은 우리가 죽은 순간에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할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간이 끝나고 영원이 시작될 때, 세계 시간의 ‘마지막 날’에 우리가 부활한다는 의미다. ‘마지막 날’은 세계의 연대에 맞춰 계산되었다. ‘마지막 날’은 또한 ‘모든 날 중의 날’이라고도 불렸다.
이신건 박사
•서울신학대학교 교수(전)
•생명신학연구소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