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위트만(Howard Whitman)은 “인생은 기다리는 기간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어린아이가 걷고 뛰면서 자전거를 탈 때를 기다리고 회사 입사 지원서를 제출하고 합격 통지서를 기다리고 신혼부부가 새집을 구입하고 입주할 날을 기다리듯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말이다. 용혜원 시인은 ‘기다림’이라는 시에서 ‘우리네 가슴은 일생을 두고 기다림에 설레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또한 시인이자 사상가인 에머슨(Emerson)은 “사람이 영웅이 되는 것은 타인보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타인보다 10분 더 오래 기다리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삼년불비불명(三年不蜚不鳴)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새가 삼 년간을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라는 말로 뒷날에 큰일을 하기 위해 침착하게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처럼 우리가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 아름다운 신비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기다림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인내가 필요하다.
성탄절(Christmas, 聖誕節)은 기다림을 신비로 승화시킨 놀라운 절기이다. 왜냐하면 왕이신 그리스도의 오심과 통치하심을 대망하며 기다려 온 대림절을 지나 그 언약이 성취되는 사건, 하늘과 땅이 만나는 신비를 기억하는 절기이기 때문이다. 원래 초대교회에서 성육신의 통합 절기(Unitive Festival of Incarnation)로 지키던 주현절에서 분리되어 나온 절기이다.
예수님의 탄생과 가장 오래된 축제일은 원래 1월 6일, 즉 주현절이었다. 이 절기는 원래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점차 서방의 여러 지역에서는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게 되었고, 성탄절이 주현절과 나뉜 것은 4세기 전반이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라는 말이 처음 나타난 것은 주후 354년경 로마 문서에서였다. 여기서 12월 25일을 “유대 베들레헴에서 그리스도가 나신 날”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성탄절은 하늘과 땅이 만난 그 놀라운 성육신의 사건을 기억하고 축하하는 날이다.
하지만 이러한 신앙적인 의미를 상실한 채, 세속적인 문화와 가치가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크리스마스는 백화점에서 먼저 온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성탄의 축하가 가장 먼저 백화점에서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다림의 끝에 온 하나님의 그 놀라운 신비가 세속적이고 소비적인 문화와 가치에 밀려나고 있는 현실이다.
특별히 24년은 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의 해였지만, 물가 상승과 함께 경제적인 어려움이 사회 전반에 가득하고, 고금리와 가계 부채로 인한 서민들의 어려움, 부동산 문제와 청년층의 고통, 저출산과 고령화, ‘묻지마’ 폭력과 데이트 폭력, 청소년의 중독 문제, 50-70만 명에 이르는 은둔형 외톨이, 심지어 정치적인 갈등과 다툼으로 인해 45년 만의 ‘계엄령 선포’ 등 이 사회는 이곳저곳에서 많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희망의 빛이라는 보이지 않는 어두운 현실처럼 느껴진다. 기다림이란 헛된 희망 고문처럼 들릴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다. 기다림이란 결코 헛되지 않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우리의 희망은 세속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하나님의 나라에 있기 때문이다. 몰트만은 세계에 나타나고 있는 고통으로 말미암아 무신론적 삶에 대해 희망의 신학으로 그 답을 하고 있다. 희망의 신앙은 오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삶의 문제를 인내하며 종말론적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능력이다. 희망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하고 부활의 기쁨을 통과하고 난 후 갖게 되는 놀라운 힘이자 신비이다. 이것이 바로 기다림을 예술적 삶으로 승화시켜 주는 비결이다.
이제 우리는 기다림의 절기를 지나 하늘과 땅을 잇는 거룩한 성탄으로 나아가는 길목에 서 있다. 기다림의 인내를 신비의 아름다움으로 성취하는 삶이 되기 위해서 몇 가지 기억해야 한다. 성탄은 성육신의 위대한 절기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성탄은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는 언약의 시작이요 그 정점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성탄은 단순한 축하를 넘어서 메시아의 구원이 우리에게 임했음을 증언하고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또한 위대한 교환의 절기라는 점이다. 성탄은 신성(divinity)과 인성(humanity)의 교환, 영원성(eternity)과 순간성(temporality)의 교환, 삶의 죽음의 교환이 깃든 절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탄을 맞이하며 하나님의 진정한 구원이 우리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모든 어둠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생명이 가득한 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우리의 기다림이 하나님의 위대한 신비가 우리의 삶에서 이루지는 은혜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안주훈 목사
<대전신학대학교 총장직무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