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에세이] 은혜일까 건망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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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기억력에는 개인차도 있고 한계가 있겠지만 알다가도 모를 일이 성경읽기다. 워낙 게으르고 열심도 없다 보니 아직 성경통독을 10번도 못했지만 예닐곱 번은 한 것 같다. 읽을 때마다 난생 처음으로 읽는 것 같은 내용이 더 많으니 무슨 조홧속인지 모르겠다. 이런 것이 은혜인지 건망증인지 분간이 잘 안된다. 우리 교회가 몇 년 전부터 새벽기도회를 성경통독으로 말씀을 전하시기 시작한 지 몇 년이 되었다. 요즘은 구약 에스겔의 말씀으로 기도 중이다.

구약의 많은 내용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 그리고 청종하지 못하고 패역한 이스라엘에 대한 진노와 징벌, 약속과 실천, 그럼에도 양보하시고 구원을 이루어 내시고 또 배반 당하시고 그래도 구원하시는 반복의 기록이 많지만, 에스겔을 읽으면서는 온몸을 타고 흐르는 전율을 감당하기가 힘들다.

아니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살아남았음이 신기할 정도의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국에는 씨를 남겨 용서하시고 구원에 이르게 하실 수밖에 없는 절절한 마음이 가슴으로 전해와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부끄러움과 회개를 쏟아놓게 되는 새벽이다. 그 대상이 바로 나다. 우상을 섬긴 죄라고 하면 얼핏 나는 아닌 것 같이 생각되지만 아니다. 눈에 보이는 어떤 물체에 절하지 않았으니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돈, 명예, 권력, 끝이 보이지 않는 욕망, 이런 것들에게 붙잡혀 노예처럼 끌려다니는 내 몰골이 바로 우상숭배의 화신이 아니고 무엇이랴.

세끼 밥을 어려움 없이 먹고 따뜻한 집에서 살고 있으면 됐지 뭘 그렇게도 더 잘 먹고 싶고 더 큰 집에 살고 싶을 게 무어란 말인가? 좁으면 좀 버리면 될 것을 이런저런 이유로 끌어안고 사는 것도 일종의 탐욕이다. 이 또한 우상 중 우상이다. 아직도 철이 덜 들어서 남이 인정해 주지 않으면 금세 토라지는 소아병적 자존심도 우상이다. 명예라는 우상이 어쩌면 가장 고약한 우상일 수도 있다. 자, 이제 제발 말씀을 잊지 않는 은혜만 받고 똑같은 회개를 반복하는 불신의 늪에서 헤어나오자. 우리를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는 그분에게 청종할 때만 우리와 하신 구원의 약속을 지키시겠다는 지엄한 명령을 기억하자.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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