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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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우스개가 있지요. 여자가 나이 들면 필요한 것이 다섯 가지인데 그것은 ①돈 ②친구 ③딸 ④여행 ⑤사우나 등이며 남자도 나이 들면 필요한 것이 다섯 가지인데 그것은 ①부인 ②아내 ③마누라 ④와이프 ⑤애들엄마 라고 하지요. 현대의 남편들은 아내의 치마폭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다는 내용을 희화화(戱畵化)한 것이겠지요.

크리스천 작가 『로이 레신(Roy Lessin)』은 깊은 통찰력과 감각적인 글을 쓰는 작가로 유명합니다. 그의 명저 「오늘 내 생애 최고의 날」(원제: Today of Best Day)은 베스트셀러였으며 기도문을 담은 20여 권의 저서와 젊은이들을 위한 선물용 저서들을 선보여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에 감동과 사랑의 마음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작가 ‘로이 레신’이 쓴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지식」이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육가」를 보내셨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건강」이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사」를 보내셨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돈(재물)」이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업가」를 보내셨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즐거움」이었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연예인」을 보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죄사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聖誕)」은 인류 최고, 최상의 기쁜 소식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돈」이 필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힘」이 필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죄 많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구원자」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손을 붙잡고 우리를 일으켜 주실 분이 필요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의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세상을 평정(平定)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진 분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식민통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유대민족을 해방시켜 줄 수 있는 정치적인 지도자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정반대로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은 이 땅에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예수님이 오신 후 30년 동안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시지도 않고 나사렛이란 시골에만 머물러 계셨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마치 도깨비방망이처럼 한 번 내리치면 땅값이 오르고, 집값이 오르고, 통장의 잔고(殘高)가 쑥쑥 올라가고, 해마다 승진하는 그런 모습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마치 예수님이 오실 당시 유대 사람들이 메시아를 기다렸던 모습과 매우 흡사합니다.

예수님이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셨기에 누구라도 예수님께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아기 예수께 첫 번째로 찾아와서 경배한 사람들이 ‘목자들’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당시 목자는 가장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님은 그들을 통해 경배 받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본받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이 본받는 것이고, 모든 일에 예수님을 닮으려고 하는 것이 본받는 삶입니다. 낮아지는 곳에 평화가 임합니다.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가난한 사람을 존중히 여기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택하사 그들에게 믿음을 주시고 참된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성탄의 ‘아름다움’입니다. 우리가 성탄을 통해 우리 주변의 가난한 이웃을 존중히 여기는 자세를 가다듬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성탄’의 참된 의미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들로만 가득하면 평화는 없습니다. 갈등과 다툼과 분쟁만 있을 뿐입니다. 

이 나라의 정치적 현실이 실로 답답합니다. 당리당략(黨利黨略)만을 앞세우고 서로 싸움만 하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의 삶’을 명상하며 훈련하는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낮은 곳에 임하셨던 예수님을 기억하고, 배우고, 훈련하는 《2024년 성탄절》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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