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대통령이 취임할 무렵 사회정화운동이 시작되었다.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일부 군사적 정변으로 자리잡은 정부는 사회 각 분야에 새로운 활력을 모색하고 보다 효율적인 면모의 새로운 질서와 진취적인 여러 면모의 다양한 발전을 성취시켜 국민의 신임을 얻기 위한 정권 차원의 운동이었다.
말하자면 당시의 구태의연한 국민정서의 또다른 활력 모색과 일부의 치안부재, 그리고 부정부패를 비롯한 가진 자와 권력자의 횡포와 군림을 막고 각종 부패와 비리를 척결하는 데 그 목적을 둔 것이다. 참으로 좋은 취지의 운동으로 새마을운동에 버금가는 훌륭한 발상적 근원이었지만, 그것이 정통성을 가지지 못한 안정되지 않은 권력을 기반으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의 집권시대라 국민들은 많이 불안해했다.
그러나 그 취지와 목적은 당시에는 누구나 공감하는 사안으로 시대에 적합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호응과 인지도를 가지고 국민의 편에서 급속히 확산되었다.
국민들을 하나로 묶기 위한 정권 차원에서 시작되어 정치, 사회, 경제 등의 통합근거로 발효된 사회정화 운동은 의욕이 앞서다보니 삼청교육대와 같은 즉흥적인 발상으로 독재시대에나 있을법한 후안 무치한 사건으로 후에 역사적으로 많은 오점을 남기는 사건으로 지금까지도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일면 무능한 정부에 지쳐있던 각계각층과 일부 지식인들의 지지와 호응도 함께 한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그간의 많은 민관 활동과 종교계의 여러 일들로 지역사회에 안면을 알리고 친목과 교류를 하고 있던 터라 당시의 동장과 파출소장 등의 적극 추천과 권유로 1982년 8월 남구 문현 3동의 사회정화 위원장직을 맡게 되었다.
서민들과 민의를 위한 일들을 결코 마다하지 않는 나는 비록 내 위상에 걸맞지 않는 한직이기는 했으나, 기존의 여러 잘못된 질서와 올바른 공무집행과 그리고 범죄와 비리부패가 없는 바른 사회를 위해 여러 현안들을 상부의 지시대로 혹은 민의에 의한 여러 일들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1986년 9월에는 ‘부산광역시 남구 사회정화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임명되면서 여태까지 보이지 않던 수면에 잠식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치부를 낱낱이 목격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인간중심의 존엄사회에서 권력의 오남용으로 많은 선량한 시민들을 불안케하고 민폐를 끼치고 종국에는 많은 사람들이 정부를 불신하는 원인 제공의 빌미가 되는 상황들을 본 것이다.
사회 곳곳에 기생하는 권력형 비리와 부패, 그리고 동네 곳곳에까지 침입한 깡패들과 주먹패거리들이 서민들의 생활과 안전을 위협하는 작태와 각 관공서의 위압적인 태도와 법질서를 위반하는 봐주기식의 여러 이해관계들을 보며 도저히 우리 사회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나 자신부터 소신껏 어떤 목표를 위한 정의로운 마음다짐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그래서 보다 남을 위해 봉사하고 섬긴다는 자세로 의욕적으로 일하다 보니 내 마음 자체도 한없이 기쁘고 한 점 티끌도 없이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이처럼 사회정화 운동이 일관되게 지속되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자 무엇보다도 놈팽이처럼 골목골목을 어슬렁거리며 시비나 폭행을 일삼고 남을 등치는 무리가 차츰 없어졌고 공무원들이 더욱 겸손해졌으며 동네가 좀더 깨끗해지는 모습이었다.
이 사회정화위원회는 건국 이후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우리 사회를 변모시키는 데 한 획을 긋는 국민 모두의 총의를 모은 운동이었으며 당시 사회 각 방면의 극도로 혼란하고 엉망인 치안질서와 도덕성을 발전적 과정의 모습으로 진일보시키는 데 크나큰 족적을 남겼다고 본다.
당시 사상과 이념으로 파생되는 여러 부수적인 문제로 일어나는 빈부 격차로 인한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이질감을 극복하는 데도 선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여러 사회의 지도자적 입장에 있는 분들의 도덕성과 윤리문제도 어느 정도 극복하는 효과도 가짐으로써 공정사회로 가는 인간가치관이 확립되는 전초적인 역할론도 함께 했다고 보여진다.
사회정화 운동에 적극 동참하며 이후 1990년에는 ‘제6기 민주평통자문위원장’을 위촉받고 나름대로 대중 속에서의 평범한 민중의 하나로서 한 시대의 사람들과 뜻과 삶과 더욱 높은 이상을 위해 함께 했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때였다.
더러는 각종 관계 관청이나 유관 정부기관에서 해결하지 못한 민원을 가지고 오는 노동자들과 가난한 이들의 사정을 접수하면서 관계요로에 접근해서 해결해줄 때의 당사자들이 좋아하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할 때면 참으로 흐뭇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사회정화위원회는 국가 자체가 힘을 실어주었으므로 어느 정도의 민의를 해결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었다.
지금 이 시대 이 시기에도 사회정화 운동은 꾸준히 지속되어 우리들의 낙후된 고정관념과 새로운 시대를 도약하는 시대상에 알맞게 자신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현존의 시대상에 알맞은 새로운 시대적 사명감과 감각을 지니는 사회정화 운동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갖는 국민의식 중 열심히 하는 자만이 인정받는 공정한 사회로서의 표본이 되는 것으로 국민들의 의식 수준을 진작시키며 엄정한 법집행으로 사회의 혼란을 막고 도덕성을 회복하고 윤리의식의 기초를 더욱 탄탄하게 하는 기초로서도, 이 사회정화운동은 언제든 그 시대에 맞게끔 개조되어 꾸준히 우리 사회의 웃머리에 서 시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보기도 한다.
양한석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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