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이나 인격을 거론할 때 학력의 높낮이를 떠나 우선 진솔한 언어력의 구사와 표현력으로 그 사람의 인성과 품격을 가늠한다. 언어는 일면 문자보다 상위개념으로 언제 어디서든 서로의 의사전달과 소통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우선 친화력에 근거한 삶을 영위하는 바탕이 됨은 물론이요, 보다 진전된 미래를 연결해주는 매개체 역할도 한다.
어휘의 개념은 우선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도덕적 관념과 윤리 의식에서 비롯된다. 연령과 혈연을 포함한 아래위의 질서를 유지시켜 주는 인적구성 관계의 소중한 표준으로서 연대와 시대의 구분 없이 우리들은 이 언어를 소통의 수단으로 더욱 명료히 해 왔다.
사실, 말은 학력의 높이나 전문성을 떠나서 상대를 평가하는 기준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삶을 유지하는 동안 어느 누구도 말의 중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말에 대해서 더욱 세심하게 주의하고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은 때와 시기와 장소에 따라 언어가 주는 개연성과 상대성 때문이다.
그것은 말 한마디에 친화와 화목, 불편과 적의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의 효용과 가치 평가는 늘 우리들의 삶과 직간접으로 연관되어 왔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금도 언어는 최소한의 예의와 행동규범에서 어떤 질서로 세상을 이끌어가는 생활과 삶의 표준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요즈음 나이나 계층이나 직능의 구별 없이 서로가 구사하는 말들 중에 은연 중 출처 불명의 비속어들이 난무하고 있어 우리들이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이미 경계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처음에는 비인격적인 가벼운 조롱이나, 유머적인 폄하 정도로 은유되던 말들의 유희가 청소년을 중심으로 과격한 비속어나 욕설, 막가파 식의 막말 등으로 변질되어 학교나 직장, 그리고 사회를 급속히 오염시키고 있어 참으로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나이나 위아래의 질서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인격 모독성의 혐오스런 말들을 일견 분석해 보면 어떤 현안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인터넷상에 무차별로 유포되는 댓글과, TV매체의 일부 오락성프로의 정치풍자나 사회만평 혹은 세태고발성에 연유한 것으로, 미처 여과 순화되지 않은 말들이 또 다른 신조어로 과대 포장되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데 근본 원인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더욱 개탄할 것은 양산되는 이런 비속어들을 미처 습득 소화하지 못한 청소년들은 또래들에게 시대에 뒤떨어진 미숙아(?)로 치부 회자된다는 것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상대에게 모멸감과 불쾌감으로 서로의 불신을 조장 야기시키는 욕설이나 막말은 우선 정서의 피폐에서 온다.
이와 같이 비상식적인 언어들이 대상이나 상대성을 가리지 않고 무방비 상태를 공중에게 노출되어도 조금도 죄의식이나 양심의 가책을 가지지 않는 형태는 정치나 사회에 대한 불신과 분노, 그리고 어떤 편견을 자신의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삼아 대리만족을 얻는 구실로 역이용하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사회 전반에 걸쳐 경계수위를 높이고 있는 이런 유형의 혐오성의 비속어들은 서로를 존중하는 상관관계는 물론, 믿음과 신뢰를 저버리는 극명한 불신의 요인이 될 수 있어 극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도덕적 윤리적 의식에서 근거한 일상적 통상어가 바른 사회의 길잡이가 된다는 등식을 저학년부터 중점적으로 교육 인지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서로를 소통함으로써 발전적 내일을 기약할 수 있고 상대를 배려한 격식과 예의, 그리고 존중과 신뢰는 ‘말’에서부터 출발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깊이 유념해 볼 일이다.
양한석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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