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또 교회 가”
다음 날 아침, 수송대에서 갑자기 나를 찾았다. 영문도 모르고 사무실에 갔더니 우리 부대에서 ‘백사’라고 부르는 감독관 준위가 앉아 있었다. “너, 국방부 갈래?” 백사의 물음에 나는 속으로 ‘할렐루야! 이제 교회에 갈 수 있겠구나’ 하고 쾌재를 불렀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보내려고 나를 다른 곳으로 옮기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로 가겠다고 대답했다.
국방부에는 육군이 대부분이라 파견된 타군에게는 텃세가 심했다. 내가 갔을 때도 보자마자 “야, 날개, 이리 와 봐. 너 몇 살이야? 왜 이렇게 늙었어? 마흔 살은 돼 보이네” 하며 놀려댔다. 그들은 공군을 날개, 해군을 물개라고 불렀고, 그에 대항해서 공군과 해군은 육군을 땅개라고 불렀다.
국방부의 수송대는 사회에서 트럭을 운전하던 친구들이 모인 곳이라 분위기가 거칠었다. 공군뿐 아니라 육군, 해군들과 함께 있는 특수한 상황이라 적응하기도 어려웠다. 그런 생활 속에서 교회에 가기란 쉽지 않았다. 육군 소속 고참들은 주일만 되면 관물 정리를 했다. 쏘지도 않는 총을 꺼내서 분해하고 쑤시고 닦고 기름칠을 하며 열심히 청소를 했다. 그런데 공군에서 온 졸병이 “교회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가버리니, 그들 눈에서는 불이 날 수밖에 없었다.
내무반의 모든 관심은 내가 주일에 교회에 가느냐 마느냐에 있었다.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이를 갈며 나를 주시했다. 주일은 점점 다가오는데 너무 초조하고 두려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하나님, 공군본부로 돌려보내 주세요”라는 기도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훈련소에서 다짐했던 대로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마음으로 어떻게든 국방부에서 버텨 보고 싶었다.
대신 마음에 소원이 하나 생겼다. 국방부 식당에 나처럼 공군에서 파견된 상병이 있었는데, 어느 날 ‘신장결석증’으로 국군수도통합병원에 후송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회복한 후에는 공군본부로 돌아갔다고 했다. 신장결석증. 이상하게 그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계속 ‘신장결석증에 걸리면 공군본부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만 하게 되었다.
드디어 토요일 아침, 내일이면 죽든지 살든지 믿음의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오전에 한참 차를 운전하며 가는데 옆구리가 참을 수 없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너무 아파서 몸이 자꾸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그 상태로 운전을 하자 군무관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야, 야. 너 왜 그래?” “아… 아… 옆구리가 너무 아파서 안 펴져요.” “안 되겠다. 일이고 뭐고 빨리 병원부터 가자!”
결국 나는 펴지지도 않는 몸으로 핸들을 돌려 국방부로 돌아왔고, 도착하자마자 바로 의무실로 갔다.
이은태 목사
뉴질랜드 선교센터 이사장
Auckland International Church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