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직종 어떤 직책 아래서도 책임자는 고독하고 외롭다. 더구나 전체를 아우르는 최고책임자는 현실과 정신적인 무게로 유형무형의 압박을 받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떤 상황이나 경우에도 그 진전과 결정에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하므로 한없이 외로운 존재인 것이다. 관할 업무와 대내외에 관한 인지도나 아랫사람에 대한 위상이나 어떤 공무를 결정하고 추진했을 때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는 결과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더불어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어려운 것은 자기 권한에 대한 책임의식이 늘 가슴을 압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어떤 의무와 권리도 종내는 결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에서든지 가령 공공의 분야든 국가나 정부를 위한 분야든 개인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녀와 연령을 초월하는 사람들과 생활양식을 달리하는 여러 직종과 직능에 근무하는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목적의식 하나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뜻과 이해를 다함께 만족하게 할 수 있는 정답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보편적인 생활의 가치관을 가지지 않더라도 나름대로의 꿈과 이상, 그리고 자신에 대한 유불리와 상대방에 미치는 영향을 우선 고려하고 계산하는 요즈음의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남구의회 의장시절에도 그랬다. 각 지역구에서 주민들의 선출로 당선된 의원들은 먼저 작은 예산이라도 자기 지역구를 우선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물론 대표성에 원래 그런 특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역 우선순위의 여러 사업들은 그분들도 인지하면서도 우선 자신을 중심으로 한 의식과 지역구 현안에 대한 문제들을 제기하며 양보와 타협을 모르는 고집스런 일념으로 일관하기 일쑤였다. 물론 팔은 안으로 굽게 마련이지만 누가 봐도 정도가 아닌 일에 집착하는 그들을 보며 참으로 난처했다.
우선 다양한 공무의 형평성을 제고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의 평등성을 가지고 이해와 협조, 그리고 양보와 타협을 우선하는 민의를 가져야 하는 게 아닐까. 그분들은 나름대로의 주민들의 설문조사와 현안의 도표를 근거로 우격다짐 식으로 자신들의 지역의 민원들을 무조건 관철시키려 전혀 주위를 고려하지 않는 모양새로 의회의 분위기를 압박해 왔다.
여러 다양한 의견들을 조율하고 모두가 만족해하는 그런 결과물의 도출은 애초부터 계산상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었다. 아무리 공평하게 의제를 채택하고 예산을 심의 집중한다고 하더라도 조금의 이익과 손해는 누구나가 감수해야 하는데도 모두가 막무가내식이었다.
이런 현상은 기업인으로서도 생산현장에서나 임직원들, 혹은 거래 상에서도 표출되었다.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온다면 기뻐하고 흡족해 했지만 상대적으로 자신이 조금 손해나 계산상의 불리를 의식하면, 먼저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의심과 기피와 심지어는 나 자신이 모르는 데서는 비방과 모략중상도 서슴지 않았다. 참으로 사람을 다룬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어렵다는 것을 매일 실감나게 겪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일은 신(神)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사실 어떤 평정심을 놓고도 우리 인간은 모두들 계산적으로 상대를 평가하기도 비하하기도 하는 것이 문제다.
그러면서도 신앙심이 돈독하거나 남을 우선 배려하는 마음 됨됨이를 갖춘 분들의 이해심이 현재의 사회를 움직이고 하나의 질서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우리사회를 보다 훈훈하게 하는 사랑의 열매 같은 구실을 한다고 믿는다.
언젠가 내가 존경하고 믿는 분의 편에 서서 그분의 일을 성심껏 돌봐주고 목적한 결과물을 얻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분의 이해와 뜻에 조금 맞지 않는다고 나를 불편한 심기로 바라볼 때는 참으로 배신당한 기분으로 며칠을 밤잠을 설치며 고뇌한 적이 있다. 아무리 좋은 마음을 가지려 해도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아서 독서도 해보고 명상도 해보며 나의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그분의 편에 서서 이해해 보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인간상실감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시간이 약이다’란 말이 있듯이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야 마음의 용서를 했지만 지금도 그분을 볼 때면 씁쓰레한 마음으로 예전의 그 절친한 마음이 되오지는 않는 것이었다.
사회와 기업, 정계나 문화계를 두루 섭렵하며 여러 직위와 직책의 수장으로 있으면서 나름대로의 인생을 경험했지만 가장 힘든 것이 사람을 다루는 일이었다.
모두에게 다 흡족하고 만족한 모범답안을 못주는 것이 가장 아쉽고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것이 인간세상의 현실인 것을. 지금도 이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의 초석이 되는 갖가지 문제와 상황들의 해결은 누가 그 위치에 혹은 그 직위에 있든 책임자는 항상 정답 없이 가능한 모든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합리적이고도 민주적인 모범답안만을 가질 뿐이다. 단언컨대 이해와 협조 사랑이 더욱 통용되는 사회를 오직 바랄 뿐이다.
오늘도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 모든 필요서류를 점검하며 과연 내가 최선의 선택과 모두의 이익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생각해본다.
누군가는 자기도 풀지 못하는 난제들을 앞에 두고 최선의 이익과 공존을 위해 씨름하고 있을 것이다.
사무실 밖 창가의 새들이 분주히 둥지를 찾고 있는 이 시각 나는 또다시 내일의 숙제를 한 아름 안고 회사를 나설 것이다. 누구보다 고독한 최고경영자에게는 자연이 가장 큰 위안이요, 마음과 정신의 어머니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양한석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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