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행복한 선택  박래창 장로의  인생 이야기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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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성장하는 기쁨, 세대와 소통하는 삶

동료 존중하며 함께 성장할 때 행복한 사람

젊은 세대와 소통의 끈 놓지 않기 위해 노력

 

동료들과 함께 일할 때도 내 옆의 다른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하고 감탄하고, 감동하고, 존경하면서 칭찬해본 적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 일을 하면 나도 변하고 동료도 변한다. 참 크리스천, 참 지도자, 헌신자, 사명자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 기뻐하고 서로 본받으려고 노력한 경험이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그렇지 않고 편견을 가지고 비판만 하고 있다면 ‘무엇을 위해서 이 일을 하는가?’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교회에서 봉사를 하면서 상처받는 또 다른 이유는 ‘내 방법, 내 경험, 내 능력’으로 끝까지 다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의 일은 내가 또는 우리가 끝까지 다 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고,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 3:6)라는 말씀을 묵상해보면 우리 능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깨닫게 된다.

우리는 그저 자기 할 역량까지만 열심히 하면 된다. 실패의 두려움, 또는 과정의 어려움을 너무 걱정해서 시작하기를 겁내거나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결과에 행복해하지 못한다. 은혜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늘 하나님께서 손잡아 주실 것으로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한결같이 성실하게 일하면 된다.

젊게 소통하면 늙어서도 행복하다

교회학교 교사를 오래 해서 좋은 점 하나는 젊은 세대와 계속 교제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주일이면 교회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치지만 그중에 세대를 넘어서 교제하고 소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 또래들하고만 인사하고 말하고 밥을 먹는다. 그러나 교회학교 교사는 어린 제자들과도 만나고, 성장한 청년들과도 만나게 된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 몇 년 안 가서 제자들은 모두 진학하고 취직해서 떠난다. 그러나 교회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 그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20년, 30년을 같은 교회에서 늘 만나면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 소망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보람 중 최고는 후배 장로로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반가운 얼굴로 나를 “선생님!”하며 불러주는 것이다.

세대 간의 소통은 ‘하면 좋은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이다. 그 점을 절실히 느꼈던 때가 스마트폰 진입 과정이었다. 젊어서부터 사업과 교회 일을 병행하다 보니 해야 할 일이나 일정이 워낙 많아, 늘 수첩이 빽빽해서 적을 데가 모자라곤 했다. 그래서 1980년대부터 샤프전자에서 만든 전자수첩을 사용했는데, 그 당시 적지 않은 나이였던 내가 전자수첩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젊은 사람들이 놀라기도 했다. 인터넷과 이메일로 업무를 처리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게 배웠다. 주위를 보면 내 또래 중에는 충분히 배워서 할 수 있는데도 고집스럽게 새로운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그것도 기능적 문맹이다. 용기를 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럼에도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것은 어쩐지 망설여졌다. 2010년, 은퇴장로 1년차였던 71세 때 일이다. 쓰던 휴대전화가 전원이 꺼진 채로 찾을 수 없게 되어서 난처했던 적이 있다. 서비스센터에 가서 상담을 해보니 직원이 그때 갓 나온 ‘갤럭시S’ 스마트폰을 권했다. 얼른 용기가 나지 않아 그대로 발길을 돌렸는데 다행히 며칠 후 집안에서 휴대전화를 찾았고 고장난 곳을 수리해서 한동안 잘 사용했다. 그래도 스마트폰을 곧 사용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 해 연말에 후배 장로가 만나자고 하더니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스마트폰 구입비’라고 쓰여 있고 40만 원이 들어 있었다.

“장로님, 기능적 문맹에서 탈출하셔야지요.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용기를 내세요!”

내가 늘 하던 말을 내게 돌려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주는 마음이 고맙기도 했지만 바로 구입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교회에서 예전 고등부 교사 때 가르쳤던 청년에게 이런 상황을 털어놓았다. “내가 스마트폰을 사려고 하는데 영 용기가 안 난다”고 말했더니 그 청년은 “잠깐 계셔보세요”라고 하면서 나가더니 금방 ‘갤럭시S’를 사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교회 카페에 앉아 한 시간을 가르쳐 주었다.

배우는 동안은 머리가 아팠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지고 와서 혼자 틈틈이 만지작거렸더니 신기하게 재미가 붙었다. 처음에 잠깐 불편하게 느꼈던 기능들은 오히려 다루기가 편리했고 쓸모가 많았다. 다양한 지식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만족감이 새로운 생동감으로 용솟음쳤다. 스마트폰을 구입하고도 예전의 휴대전화 기능만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나는 되도록 많은 기능을 사용하려고 계속 노력 중이다. 이후로 거의 2년마다 최신형 핸드폰으로 교체해온 끝에 지금은 삼성 스마트폰 2023년형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기능적 문맹’을 적극적으로 벗어버려야 하는 이유는 노년의 적막한 울타리 안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요즘 ‘노후 대책’이라는 말을 많이 듣지만, 돈만 많이 벌어 놓는다고 노후 대책이 아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적응 능력을 길러 놓는 것이 진정한 노후 대책이다. 새로운 디지털문화의 언어를 배우고 사용하고 뜻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직접 운전해서 어디든 갈 수 있고,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으며, 젊은 세대와 소통의 끈을 놓지 않으면 노년이 고독하지 않다.

나는 집에서 나갈 때나 들어올 때, 아파트 입구 또는 엘리베이터에서 젊은 사람들을 만나면 늘 먼저 인사를 한다. 그들에게 눈인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다. 그러면 그들도 미소를 띠며 꾸벅 인사를 한다. 그 모습이 보기가 좋다. 우리 나이 든 세대는 너무나 오랫동안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약점을 감추려는 열등감의 갑옷을 입고 살아왔다. 지나치게 능청스러워도 거부감을 일으키지만, 무뚝뚝한 표정도 바꿀 때가 됐다. 

박래창 장로

<소망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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