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우드는 경신학교 대학부로 조선 기독교대학을 세우고 대학교로 세워지길 기대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한국에 대학 설립을 허락하지 않고 전문학교를 허락하니 연희전문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인을 회유하기 위해 관 주도로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한다.
그러나 언더우드와 에비슨은 포기하지 아니하고 연희전문과 세브란스 의학교가 통합, 종합대학으로 세워지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언더우드는 1916년 뜻을 이루지 못하고 별세한다.
언더우드의 형 존 토마스 언더우드는 언더우드 타자기를 개발하고 인쇄업을 하던 부자였다. 그는 동생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대학 설립을 위해 큰돈을 기부한다. 연희전문과 세브란스 의학교 – 양 학교 교장을 겸임하던 에비슨을 위해 존 토마스 언더우드는 에비슨에게 자동차를 보내 서울역(세브란스 의학교)와 신촌(연희전문)을 오가며 근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들의 기도와 노력으로 드디어 1955년 양교 통합이 결정되고 1957년 두 학교 통합 연세대학교가 설립되었다.
지금도 연세대학교에 가면 선교의 흔적 셋이 서 있다. ① 제중원 ② 루스 채플 ③ 언더우드 기념관이다.
첫 번째는 제중원이다. 지금 서 있는 제중원은 갑신정변과 이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갑신정변으로 상처를 입은 민영익의 치유가 제중원 설립의 계기가 되었다. 고종은 갑신정변의 실패로 주모자 중 한 사람인 홍영식의 집을 빼앗아 제중원에 넘기고 그때 그 제중원 홍영식의 집을 뜯어 세브란스 안에 세웠다.
두 번째는 루스 채플이다. 루스는 38세에 헨리 루스 재단을 세운 큰 부자였다. 그는 타임지, 포춘지, 라이프지 등 언론기관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루스는 중국 선교사였던 부모를 기리기 위해 연경대학교(베이징대학교)에 큰 기부금을 냈다. 그리고 록펠러와 함께 기부금을 보내 연세대학교 예배실 루스 채플을 세우게 한다.
마지막 세 번째는 언더우드 기념관이다. 원두우의 아들 원한경은 연세대 3대 학장시절 언더우드 기념관을 짓는다. 1949년 원한경의 부인 에델 언더우드가 좌익 계열 청년들에 의해 저격당하고 별세한다. 이 사건은 한국인에 의한 미국인 살해의 첫 번째 사건이었다. 심지어 제자에 의한 선교사 저격 사건이다. 원한경은 아내의 죽음이 한없이 아프긴 하지만, 이 일로 한국 땅에 들어오는 선교사들의 발걸음이 위축되거나 방해를 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6.25전쟁으로 파괴된 언더우드 기념관은 언더우드 3세 원일한에 의해 재건축되었다.
<다음편에 계속>
류영모 목사
<한소망교회•제 106회 총회장•제 5회 한교총 대표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