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유대교의 전통에 따라 장사(葬事)되셨다. 시신(屍身)을 향신료(香辛料)와 세마포로 조심스럽게 싸서 동굴 안에 있는 단(壇)같은 곳에 올려 놓았다. 유대의 무덤 동굴 안에는 한 구(柩) 이상의 시신(屍身)이 안치되어 있기 때문에 냄새가 많이 난다. 뼈를 수습해서 경건하게 싼 다음 유골함(遺骨函)에 보관해야 했다. 예수님의 무덤은 정말 비어 있었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의 시작이 되었고 역사의 중심이 되었다. 과학을 넘어서는 실로 당혹스러운 영역이었다. 제자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싶어하고 만지고 싶어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자신을 보여주시면서 만져 보라고 하셨다. 그러나 도마는 만져보지 않았다. 자신의 이성(理性)을 초월해서 더 높고 풍요로운 영적인 앎의 방식으로 들어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죄악을 속량(贖良)하시고 구원하러 오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다. <비탄의 노래>(Imptoperias, Song of Mourning)다. 성(聖) 금요일에 많이 부른다. “내 백성아! 내가 너에게 잘못한 것 무엇이냐?/ 무엇으로 너를 근심하게 하였더냐? 대답해 다오./ 나는 너를 이집트 땅에서 구해 내었건만/ 어찌 너의 구세주에게 십자가를 마련하였느냐?/ 포도원을 마련해 주었건만/ 너는 어찌 나에게 가장 쓴 것을 주었느냐?/ 목마른 나에게 너는 신포도주를 주었느냐?/ 너의 구세주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지 않았느냐?/ 너는 어찌 나를 매질하고 뺨을 치느냐?/ 너는 어찌 나에게 쓸개와 초를 마시게 하느냐?/ 너는 어찌 갈대로 내 머리를 치느냐?/ 너는 어찌 내 머리에 가시관을 씌웠느냐?/ 너는 어찌 나를 십자가 형틀에 매달았느냐?” 도마의 가슴 떨리는 고백이다. “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신앙은 창조주 하나님, 나의 구주 그리스도 예수님께 대한 신뢰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음을 믿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새 창조의 일부로써 미래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우주 전체의 구속(救贖)이 있을 것을 선포하고 기록했다. 모든 앎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믿음, 소망, 사랑뿐만 아니라 역사적 앎과 과학적 앎도 마찬가지다.
‘죽은 사람은 부활하지 않는다’고 계몽주의는 선언했다. 그들은 부활을 원치 않았을 뿐이다. 21세기에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다시 희망을 발견하는 일이 우리 앞에 있다.
신자(信者)의 영혼은 죽을 때에 완전히 거룩하게 된다. 하나님 앞에 인도된다. 하나님의 빛나는 계시와 거룩한 천사들과의 교제를 계속한다. 사악(邪惡)한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다는 것과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주장한다. 그들은 사탄의 세력이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지금도 살아 계신다. 주님께서는 “천국에 우리를 위한 처소(處所)를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셨다. 이 세상 너머에 영광스럽고 복된 하늘 나라에서의 영생(永生)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하늘 나라의 시민’이다. 세상에서 우리의 일이 끝나면 우리의 영혼이 그곳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새 예루살렘 성(城)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님! 새 생명을 주신 주님을 경배하며 예배한다! 찬송한다!
사망을 이긴 주, 교회의 머리라/ 죄 사함 받은 우리도 주 함께 살리라/ 주 부활 하셨네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모두 알도록 다 전파하여라/ 저 모든 천사여 거문고 타면서/ 사망을 이긴 주님을 늘 찬송하여라/ 하늘에 오른 주, 영원히 계시사/ 온 교회 성도 위하여 늘 기도하시네.(찬송가 172장)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노라.” 아멘.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