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여정] 나의 작품 나의 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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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으면 아슴히/고향마을 회남면 판장리가 보인다/지금은 형체도 자취도 없어진 수몰지구의 억울한 내 고향 마을이

여러 백년을 지킨 마지막 큰키 나무가/물에 잠기지 않으려 발버둥치며/마을사람들의 통곡소리와 함께/6월 하늘 아래 미루나무와/아카시아 꽃들이 서서히 첫물이 담수할 때/뚝방으로 방천으로 산으로 내달리며/생명을 부지하려 필생으로 탈출하던 미물들/얼마나 사람들을 원했을까

우허리 우허히 울면서/결코 주인을 따라 나서지 않고/저 혼자 막사를 지키려던/소들의 처절한 울음소리들/지금도 눈감으면 동강난 가슴에 상처로 오는/산하의 비명소리/내 고향, 회남면 판장리 수몰지구

양한석 시 「수몰지구 내 고향」 전문

집에 와서 탈고를 해 ‘수몰지구 내 고향’ 이라고 표제어를 붙여 문예지에 상재하면서 시인이 되지 않았으면 이런 마음안의 회상을 어떻게 남겨 놓았을까 생각하니 늦깍이라도 시인의 반열에 선 것이 꿈인 듯 생시인 듯 보람으로 충만한 하루였다.

그 어려운 시(詩) 창작법을 공부할 때가 새삼 생각나고 그때 그 시기에 시공부를 안했더라면 참으로 큰 후회가 될 뻔했다고 생각되어진다.

마음 쓸쓸할 때 우울할 때 혹은 남다른 감성으로 오는 때와 시기 등, 그때마다 내 마음 안에 간직한 감정과 감성의 시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사람은 무슨 일이든 때와 시기가 있다고 한다.

무엇을 하고자 할 때와 시기를 실기하면 두고두고 후회해도 이미 지나간 세월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이쯤 해서 이 나이에 가장 은혜 깊은 서로의 믿음과 신뢰로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부부 이외에 또 누가 있겠는가.

일생을 고통 받고 시련 받고 방황할 때 단 한번이라도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성심껏 들어주며 함께하는 이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다들 말한다. 그 자체가 서로의 배필이 첫째가 아닌가.

하물며 고희가 지난 이 나이에도 아직도 건강한 부부로서 서로 신뢰하면서 존경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그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행복이라 생각된다. 어느 날 해운대 바다의 눈부신 역광을 바라보면서 문득 아내를 생각하며 쓴 시이다.

부부는 서로의 양지이어야 합니다/절정의 꽃이 지순과 맑음으로/꽃 피우듯이/부부는 서로의 끊임없는/희망이어야 합니다./가이없이 닿을 수 없는/저 푸르름의 하늘처럼/부부는 양보와 용서로/언제나 한마음 한뜻이어야 합니다/서로의 마음 안에 간직한/은혜로 오는 운명처럼/부부는 서로의 영원한 울타리여야 합니다/세상사 다하는 날까지/서로를 지켜줄 고귀한 생명선처럼

양한석 시 「부부」 전문

마침 황혼이라 노을과 우리 부부의 나이들을 함께한 이 시를 ‘부부’라 제목 짓고는 나는 자못 엄숙해졌다. 너무나 행복에 겨워서인가, 서로의 양지가 되고 때로는 그림자가 되어 일생을 함께 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 아름다운 행복이 깨어지지 않고 사는 동안 늘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빌 뿐이다.

고희가 지난 지금은 어떤 목표나 근사한 이상이나 큰 포부보다 마음 안에 깃든 고요와 더불어 맑고 조용한 분위기에 세속에 물들지 않는 그 어떤 고매한 풍경처럼 오래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다.

나와 거의 한평생의 아슬한 마음을 나누며 때론 근심과 고통 혹은 인내로 힘겹게 산 이 한 세상도 간혹 분에 넘치는 사랑과 영광을 받았던 때도 다 잊고, 지금은 현존하는 이 자리에서 아름답게 나를 부려놓고 싶다.

무료한 일요일 문득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해운대 바다를 바라보며 시 한편을 암송해 본다.

거실에서 바라보는 해운대는/신이 창조한 바다의 도시다/일찍 일어난 파도들은/아파트 근처에서부터 자기 요함을 만든다/아침을 인사하고/오늘의 거룩한 일과를 예보하는/파도들 무리 곁으로/하루를 배웅하는 바다새들이

부지런히 날고 있다/남해 바다와 어울린/부산의 상징인 오륙도는/오늘도 부산의 경계로/물비늘 깊게 육지로 돋는다/멀리 유람선 하나/가을 바다를 금긋고 가는 일몰쯤/광안대교의 소소한 풍경들이/세상처럼 오늘을 들여다보고 간다/오늘도 해운대는/우리들의 부근에서 닻을 내리며/내일의 희망을 꿈꾼다

양한석 시 「해운대 풍경」 전문

제목을 ‘해운대 풍경’이라고 이름하며 그윽이 다시 한번 시를 들여다보는 하오(下午). 오대양과 육대주를 누빈 한 바다가 한없는 생애의 큰 물질로 자맥질하며 피안에 닿고 있다.

어느덧 그 풍경 속에 작은 물무늬로 어울리고 있는 우리 부부의 자화상을 본다.

양한석 장로

• 문현중앙교회

• 시인 

•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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