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역사에 길이 남을 악명”
하나님께서는 평안한 가운데서도 한 번씩 어려움을 주신다. 어려움 안에서 흔들리지 않았을 때 더 큰 복을 주시기 위함이다. 내가 인품 좋고 신앙심 깊은 단장님을 만나 평안한 나날을 보내던 중 갑자기 인사이동이 생겨 학군단 단장님이 바뀌게 되었다.
단장님을 따라갈 수도 있었지만,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점이 좋아서 나는 그냥 남기로 했다. 그런데 새로운 사람이 오기도 전에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새로 오는 단장은 다혈질이라 자기 분을 못 참는 데다 방위병을 돌로 쳐서 입원시킨 적도 있다는 것이다. 들어보니 악명이 높을 만했다. 오죽하면 그 부대에 있던 동기 녀석이 전화해서 나보고 빨리 다른 부대로 가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내 마음은 그저 평안했다. 주님의 역사하심을 친히 체험해 온 내가 무엇이 두렵겠는가? 다가올 시련을 어떻게 이끌어 승리하게 하실지 기대가 되기도 했다. 그 유명하신 분을 차에 태운 첫날, 용기를 내어 새로 온 단장님께 말씀드렸다.
“단장님,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그래서 한 가지 부탁을 드립니다. 제가 평일에는 밤늦게까지 일해도 좋은데, 주일에는 꼭 교회를 가야 합니다.” “그래? 교회 가야지, 그럼.”
갑작스럽고 당돌한 부탁에 단장님은 긍정적으로 대답했다. 허락을 받긴 했지만 과연 이 대답을 믿어도 되는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문으로만 듣던 단장님의 성격이 나오기 시작했다. 출퇴근 시간에 서울 시내 도로가 막히는 건 예삿일인데, 그걸 참지 못하고 차 뒤에서 일어났다 앉았다 하며 갖은 욕을 퍼부어 댔다. “서울시에 있는 이 공무원 XX들 다 총살시켜 버려야 돼.” 그리고 내게도 시비를 걸었다. “너는 왜 이 길로 와서 사람 속을 다 뒤집어 놓냐? 삼각도법도 몰라? 이 돌머리야!” 성수대교가 아니라 반포대교로 가는 길이 더 짧다는 말이었다.
물론 나도 그 길이 더 짧은 건 알았지만 반포대교가 더 막히기 때문에 항상 성수대교 쪽으로 차를 운전했다. 새 단장은 늘 다니는 길인데도 길이 막히기만 하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심술을 부렸다. 다음 날부터 나는 반포대교로 차를 몰았다. 그랬더니 성수대교보다 훨씬 더 밀렸다. 꼼짝도 하지 않는 차 안에서 단장은 본인이 해놓은 말 때문에 화도 못 내고 안절부절못했다. 그 다음날도 나는 반포대교 쪽으로 갔다.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단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일은 너 가고 싶은 대로 가.”
그런데 나는 다음 날도 반포대교를 택했다. 나의 황당한 대응에 단장은 자존심을 버리고 말했다. “야, 야. 이제 그냥 성수대교로 가!”
반포냐 성수냐의 신경전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단장은 그 후에도 성수대교로 가다가 차가 밀리면 본색을 드러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어느 날, 나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차에 올라탔다.
(다음호에 계속)
이은태 목사
뉴질랜드 선교센터 이사장
Auckland International Church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