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봄에는 꽃소식이 유난히 늦다. 4월에도 영하의 추위가 찾아오는가 하면 갑자기 진눈깨비가 날리고 잔가지가 부러질 만큼 갑작스러운 돌풍이 불기도 한다. 이런 불안정한 날씨 탓에 4월 중순이 되어도 아직 집주변에는 잎이 나지 않은 앙상한 나뭇가지와 황토색의 단조로운 풍경으로 가득하다.
집 주위에 심은 여러 꽃 중에서도 올해 특별히 마음이 가는 것은 지난 4년 전 처음 조경을 하면서 심은 작약이다. 매년 봄이면 현관 계단 옆에 흐드러지게 풍성한 꽃으로 우리 눈을 즐겁게 하였건만, 올봄에는 4월 초까지도 싹이 보이지 않았다. 지난 초겨울에 줄기가 다 말라버려 밑동까지 잘랐는데 그 때문인지 올해는 싹이 나기 틀렸다고 실망하고 포기하는 마음이 앞섰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일 들여다보아도 맨땅에 싹이 올라올 생각조차 없다.
그런데 참으로 예기치 못한 어느 날, 매일 실망스러운 눈으로 확인해 보던 그 자리에 아! 놀랍게도 아주 작은 빨간 싹이 마치 아기 혓바닥을 내밀듯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하나가 아니라 무려 여섯 개의 아주 아주 작은 점과 같은 싹이 보일 듯 말듯 내밀고 있다. 생명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렇게 혹독한 겨울을 지내고도 따뜻한 봄볕이 이렇게 앙증맞은 새싹을 내밀게 하는 힘을 지녔구나. 그렇게 마음 졸이고 실망하고 낙담하는 동안에는 봄이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다가도, 느닷없이 찾아온 봄소식은 우리의 그 낙담이 언제 그랬는지 잊게 하는 그런 기쁨으로 우리 마음을 가득 차게 한다.
그 후로 매일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는 작약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여름날 흐드러지게 필 꽃을 상상하는 또 다른 기쁨에 잠기곤 한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지향하면서 살아간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면 우리는 정체성을 잃는다. 내가 누구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나를 둘러싼 과거의 기억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소망과 믿음이야말로 고난 속에서도 기쁨을 찾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현재의 고난이 미래의 소망과 만날 때 우리는 정말 예기치 못한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스의 시 ‘예기치 못한 기쁨’은 이 사실을 잘 보여준다. 워즈워스는 이 시에서 세 살 때 잃은 어린 딸의 기억이 문득 기쁨으로 다가오지만, 곧바로 그 기쁨과 함께 딸의 부재를 슬퍼하는 마음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영국의 기독교 작가 C. S. 루이스는 자신의 자서전의 제목으로 ‘예기치 못한 기쁨’이라는 이 워즈워스의 시를 인용했다. 이 자서전은 그가 무신론자에서 어떻게 크리스천이 되었는지 회심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기록이다. 어린 시절 무언가에 대해 깊은 갈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정체를 알지 못했지만, 점점 자신의 삶에서 순간순간 어렴풋이 계시와 같이 찾아오는 순간들을 예기치 못한 기쁨의 순간이라고 이름 지었다. 그리고 그가 정작 회심의 순간에는 기쁨을 느끼지 못했지만 뒤늦게 회상을 통해서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간 예기치 못한 기쁨의 순간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마침 지금 우리는 부활주일을 맞이하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슬픔과 실망과 좌절의 시간을 보내고, 안식일이 끝난 새벽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빈 무덤을 발견하고는 슬픔이 가득 차 있었지만, 곧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놀라운 기쁨을 경험했다. 우리도 이 봄에 온 세상에 가득한 생명의 기운을 만끽하면서 부활의 기쁨과 참된 의미를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란다.
김완진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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