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기독교 강요>에 나오는 교회론(Ecclesiology)의 일부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성도들에게 교회는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한다.” 성도들은 어머니인 교회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다. 이는 예배를 통해 이루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해 신자들을 세워가시기 때문이다. 곧 양육과 훈련이다. 세례와 성만찬,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례(聖禮)를 보존하기 위해 교회를 자신의 몸과 같이 소중히 여기신다. 교회는 우리의 믿음을 돕는다.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은 자들을 돕도록 교회를 주셨다. 목사와 교사들은 복음을 가르친다. 성례들을 통해서 믿음을 자라게 하신다. 교회론은 교회의 본질과 사명 권위에 대한 통찰이다. 교회의 기초를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미리 아시고 인(印)쳐 주신다.
어거스틴은 교회를 ‘하나님의 성령을 받고, 사랑을 특징으로 가진 선택 받은 자들의 공동체’라고 했다. 성도는 교회를 통해 은혜를 받으며 공동체에 참여하게 된다. 성도의 진정한 연합은 교회의 영광을 의미한다. 선택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된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의존해 한 몸이 되며 한 지체가 된다. 한 믿음과 한 사랑으로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함께 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모든 교육을 목사님들에게 맡기셨다. 목사님들을 통해 영적인 양식을 공급해 주신다. 복음만이 중심이 되고 도구가 된다. 복음을 통해 구원하는 능력을 나타내시며 우리에게 믿음을 불어넣어 주신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하나님의 진리의 충실한 파수꾼’으로 삼는다. ‘진리의 기둥의 터’ ‘하나님의 집’으로 부른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자신의 신부’로 여겨 주신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장로들을 임명할 때 교회의 성도들이 거수(擧手)로 뽑았다. 현대의 투표 행위와 같다. 구약에서 레위족의 제사장들을 성별하기 위해 온 백성들 앞에 내세운 것도 이 원리다. 맛디아와 일곱 집사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뽑았다. 교회 일꾼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합의로 선출하며 공동체의 승낙과 승인을 얻어서 임명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의 은혜를 감사, 찬송하며 그 안에 사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원의 은혜를 전파하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신령한 생활을 하며 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다.
교회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교황제가 수립되어 교회를 다스려 오는 동안 교황의 권한과 권세가 막강해졌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심에도 교황이 그 머리가 되었다. 종교 개혁 시대에 이르러서는 면죄부(免罪符)까지 판매하는 상황이 되었다. 국왕의 왕권을 부여하기도 하고 빼앗기도 했다. 칼빈은 중세 가톨릭 교회의 부패를 목격하면서 모든 의사 결정이 교황을 중심으로 독단적으로 이루어지는 데서 오는 부작용, 역기능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그래서 도입한 제도가 바로 장로회 제도이다. 교회의 의사 결정을 당회장과 당회원 즉 위임 목사와 장로들이 회의를 통해 합의제로 운영하게 했다. 목사와 장로는 총회원, 노회원이 될 수 있다. 당회의 직무는 교회의 헌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어느 은퇴 장로님이 주장하는 교회론이다. 한국 교회의 침체와 세속화의 원인은 목사와 장로에게 그 책임이 있다. 목사와 장로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면 교회도 바르게 갈 수 있다는 의견이다. 때문에 교회를 수레에 비유해 교회의 두 바퀴는 목사와 장로라고 말한다. 집사와 권사는 이 두 바퀴가 잘 굴러 갈 수 있도록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실적으로 귀담아 들을 만한 얘기라는 생각이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