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건강한 명사는 형용사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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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주일을 맞아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은 그의 책 『묵상하는 목회자(The Contemplative Pastor)』에서 “건강한 명사는 형용사가 필요 없다”는 말을 했다. “건강한 명사는 형용사가 필요 없다. 형용사는 건강한 명사를 어수선하게 만든다. 그러나 명사가 문화 때문에 손상되었거나 병에 걸렸다면, 형용사가 필요하다.”  

이 문장은 피터슨이 목회자라는 명사의 본래 의미를 회복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는 목회자라는 단어가 본래는 형용사 없이도 충분히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건강한 명사였으나, 현대 사회에서는 그 의미가 손상되어 다양한 형용사로 수식되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생각할수록 의미심장한 말이다. 

예를 들어 엄마라는 말을 살펴 보면 굳이 위대한 엄마 좋은 엄마를 쓰지 않아도 된다. 엄마!라는 말 자체가 위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이 악해져 가면서 위대한 엄마라는 단어 앞에 형용사가 필요해진 것이다. 언론이 자녀를 버리는 엄마가 있다고 보도한다. 게임을 하다 자녀를 방치해서 죽게 만든 엄마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엄마 앞에 형용사가 필요하게 되었다. 좋은 엄마!라고 말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원래 교회라는 단어 앞엔 어떤 수식어도 필요 없었다. 교회 자체가 위대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대가 악해져 가면서 교회 앞에도 형용사가 필요하게 됐다. 변질된 교회, 본질에서 멀어진 교회,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버린 죽은 교회가 많아진다면 형용사 수식이 불가피하다. 좋은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 교회,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임재하시는 복음적인 교회 등 왜 교회가 좋은지 한참을 설명해야 된다.  

슬픈 것은 가정도 마찬가지다. 원래 가정이라는 말은 형용사가 필요 없어야 당연하다. 원래 가정은 말만 들어도 좋았다. 그런데 21세기를 살아가는 가정들이 너무 많이 깨졌고 뒤틀려 있다. 가정이라는 단어 앞에도 이제 형용사가 필요하다. 온전한 가정, 건강한 가정이라고 말을 해야 이 단어도 빛나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청년은 참 괴로운 세대이다. ‘NEET족’이란 말이 유행된 때가 있었다.(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청년무직자를 일컫는 말로 결혼도 하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고, 취직도 하지 않고, 직업훈련도 하지 않고 모든 일에 의욕이 없는 세대를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대인관계나 사회활동을 피하고, 게임이나 음주나 마약 등에 빠져 있는 사람이다. ‘삼일절’은 31세까지 취업하지 못하면 절망이라는 말이고 ‘청백전’은 청년백수 전성시대라는 말이다. ‘행인’은 잔심부름하는 행정 인턴을 말한다. 요즘에도 사회 현상을 반영한 용어들이 많이 쓰이고 있다. MZ세대(밀레니얼, 1981~1996년생) + Z세대(1997년 이후 2000년대 초반 출생), 헬조선 세대, 삼포세대, 오포세대, N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한 세대). 청년실신세대(청년+실업+신용불량의 줄임말), 은둔형 외톨이, 자발적 백수 등 이런 말들이 우리 시대의 유행어가 되었다는 자체가 참 슬픈 일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이런 사회의 현상을 거슬러 가는 지혜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

요즘 우리는 ‘좋은 청년’ ‘믿음 좋은 청년’, ‘성실한 청년’, ‘가능성 있는 청년’ 같은 말을 자주 듣는다. 말은 선하지만, 그 말들 속에는 어떤 조건이 숨어 있다. 무언가를 더해야 비로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청년이라는 말은 이미 그 자체로 건강한 명사다. 따로 수식어가 필요 없는, 하나님께서 아름답다 말씀하신 창조적인 이름이다. 청년은 그 자체로 생명이 넘치고 무한한 가능성이 잠재된 하나님께 부름받은 존재이다. 

비록 지금은 취업의 문이 좁고, 미래는 불확실하며, 세상은 복잡하고 경쟁은 치열하지만, 그 누구도 ‘좋은 청년’, ‘유망한 청년’이 되어야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모습 그대로, 청년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귀한 존재다.

덴마크의 국부 그룬트비 목사는 젊은이들에게 나라 사랑, 땅 사랑, 하나님 사랑을 가르쳤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대한 청년제군의 외침’이란 글을 통해 젊은이들의 애국심을 고취하려고 했다. 이 모든 것들이 청년이 국가의 미래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스스로가 미래의 주역으로 자신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요한일서 2장 14절에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라고 말씀한다. 청년들이 강해야 하는 것은 모두가 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강해질 수 있는지성경은 우리에게 그 해답을 준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안에 거해야 강해질 수 있다고 말씀한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섰을 때, 그는 ‘용감한 장수’가 아니라 ‘한 청년’에 불과했다. 예수님이 부르신 제자들도,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학벌도, 지위도, 보장된 미래도 없던 청년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 손에 들려 세상을 바꾸는 도구로 쓰임 받았다.

청년이란 나이가 아니라 생각이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이다. 청년은 이미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존재다. 청년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기대와 사랑이 담긴 말이다. 그러므로 두려워 말고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형용사가 없어도 충분히 귀한 당신을 지금도 부르고 계시기 때문이다.

남택률 목사

<광주유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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