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통한 삶과 믿음이야기] 나의 버릇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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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버릇 때문에 고민할 때가 더러 있다. 응당 칭찬해야 할 말을 했음에도 때로는 했던 말을 다시 생각해 보기도 한다. 10여 년 전 교인으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장로님은 누구에게나 칭찬을 해주시던데요? 말씀대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는 의도이다.

최근의 일이다. 나는 우체국을 가려고 우리 아파트에 딸린 공원을 지나가는 참인데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가 내 곁을 걷고 있었다. 너무도 천진난만한 모습이기에 “너 참 예쁘구나” 칭찬을 해주었더니 갓 30대로 보이는 그 애 엄마가 내게 “그러지 마세요. 무서워해요” 하지 않는가. 그렇지. 오늘의 사회가 믿을 수 없는 현실이기에 무서워하겠지. 그러나 현실을 부정적인 의미로 바라보도록 가리키면 어찌될까? “감사해요”라고 말해야지. 이렇게 자녀에게 교육을 시킬 때 긍정적인 마음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어릴 때 교육은 평생을 지배한다’는 우리네 속담이 있기 때문이다. 이 어린아이가 장성해 사회를 이끌어갈 때 얼마나 각박한 사회가 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우체국을 향해 가려니 자연히 발걸음이 터벅거려진다.

중국 고사(古事)에 ‘교언영색(巧言令色)’이란 말이 있다. 남의 환심을 사려고 아첨하는 교묘한 말이나 보기 좋게 꾸며내는 얼굴빛을 말한다. 아름다운 말일지라도 믿을 수 없다는 말이다. 달콤한 말에는 백 가지 해독이 있고 한 가지 이로운 것이 없으며, 사실을 과장해 마음을 속이기 쉽다는 뜻으로 경계하라는 말이다. 옛날에도 진실한 한마디가 아쉬웠던 모양이다. 얼마나 거짓이 판을 쳤으면 이런 경계의 말이 있었을까.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것은 같은 모양이다.

성경에도 고린도전서 13장 전체가 사랑의 장이다. 인간사회에서는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이다. 지면관계상 4절에서 7절까지만 살펴봤다. “④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⑤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⑥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⑦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우리는 현실의 옷을 입고 살아간다. 현실 속에서 숨 쉬고 울고 웃고 부대끼며 살아가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강인한 믿음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다. 거기엔 불타는 투지와 인내의 삶이 필요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얼마나 육체적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가. 사람에 따라서는 온갖 질병으로 고통을 받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풀리지 않는 생활고로 인한 시달림을 받기도 한다. 또 자기 앞길을 개척할 젊은 시절에는 얼마나 많은 역경을 감내해야 하는가. 참으로 답답할 때가 많다. 이럴 때 절묘한 묘약이 칭찬과 격려라고 여겨진다.

옛 속담에 ‘사람이 지식으로만 살면 모가 나고, 정으로만 살아가려면 우유부단하며, 의지로만 살면 답답하다’는 말이 있다. 세상 살아가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요, 처세하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마음이 못내 쓰리기도 하고 아픔을 참고 견디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치솟는 분노를 억제치 못해 이성을 잃은 채 마음의 중심이 흔들릴 때도 있다. 이럴 때 의욕을 일으켜 주는 말은 없을까? 포근하게 감싸주는 한마디는 무얼까.

※그동안 ‘문학을 통한 삶과 믿음 이야기’를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주 –

하재준 장로

 중동교회 은퇴 

 수필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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