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내 길의 한 줄기 빛 이만영 장로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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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터전인 도림교회(8)

-이만영 장로의 활동

1973년 9월 9일 교육관 건립과 기금 모금을 추진하기 위해 조직된 건축위원회에서 이만영 장로는 회계를 맡아 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그러나 1973년 이후 교인 수가 급증하여 도림교회는 1975년 본당 확장공사를 먼저 마친 후인 1979년 420평에 달하는 3층짜리 교육관 건설을 완공했다.
또한 도림교회에서는 1959년부터 산업인들을 위한 기도회와 성경공부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발전하여 교회 내에 산업전도회를 조직하게 되었다. 1964년 8월 9일 도림교회 소속의 산업인들이 낮 예배 모임을 갖고 공장 별로 구분하여 교회 안에 산업전도회를 조직할 것을 논의했고 8월 23일에는 도림교회 산업전도회 발기 총회가 개최되었다.
10월 18일에는 도림교회 산업전도회 총회로 모여 새 임원을 선출하고 매주일 예배 후에 처음 출석한 산업인들을 위한 환영회를 가질 것, 공장별로 산업전도회를 조직할 것 등 여러 가지 사업을 토의 결정했다. 이만영 장로는 이렇게 시작된 산업전도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도림교회의 산업전도활동은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도림교회는 기도회, 신앙 상담, 성경공부, 헌신예배 개최 등을 통하여 산업인들에게 신앙을 심어주고 영적 자질을 향상시키려는 것을 우선 목표로 정하고 산업전도활동을 추진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고향을 떠나 객지의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일을 해야 되는 사람들을 위해서 주중에 직장에서 또는 교회에서 예배모임을 갖도록 주선했다. 또한 예배모임 이외에 주중에 정기적으로 기도회, 성경모임을 갖도록 했고, 수시로 특별기도회, 산상기도회, 철야기도회 등을 개최했다.
1965년부터는 유병관과 신상길이 매주일 이틀 저녁을 정하여 근로자를 위한 신앙상담, 산업상담, 개인상담을 실시하였다. 교역자들은 혼자 올라와서 일을 하는 많은 젊은 남녀 근로자들에게 부모의 역할을 대신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산업인들을 위한 주간 성경학원을 실시하였다. 1970년대의 금요심야기도회와 성경통신과 공부는 산업전도회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둘째, 도림교회는 산업전도회의 자치활동을 통해서 산업인들의 영적, 사회적 지도력을 배양하고 조직력을 강화하는데 힘을 썼다. 대부분 대학생 및 본 교회 출신으로 구성된 청년부와 분리하여 산업인들이 직접 산업전도회의 회장, 부회장, 서기, 회계, 총무, 각부 부장 등 임원의 직책을 맡게 함으로써 단체생활과 사회생활에서의 지도력을 기르게 했다. 산업전도회의 활발한 자치활동을 통해 교회의 일꾼이 많이 배출되었다.
산업인 및 근로자의 신앙을 강화하고, 지도력을 기르기 위해 담임목사 유병관은 산업전도회가 시작된 후 1년에 약 2번씩 주일 저녁에 산업전도회 헌신 예배를 드리게 했다. 사회, 기도, 특별순서, 사업보고 등을 통해서 산전 임원과 회원이 직접 예배를 주관했다. 산전헌신예배는 1974년 유의웅이 담임을 맡은 후에도 1년에 두 번씩 계속되었다. 이 외에 도림교회는 산업전도회를 거쳐간 많은 회원들이 전국 각처에 흩어져 교회에서 또는 산업현장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셋째, 도림교회 산업전도회는 자치활동을 통하여 산업인들 사이의 연대감을 높이고,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지도력을 고취시켰고, 또 한편으로는 이와 같은 자치활동이 봉사, 전도로 이어져 1960년대와 1970년대 교회 부흥에 크게 기여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넷째, 도림교회 산업전도회는 헌신예배, 특별행사 세미나 때 수시로 산업전도 실무자를 강사로 초청하여 산업인들이 산업사회, 노동세계, 노동법 등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기여했다.

다섯째, 도림교회의 산업전도활동은 영등포지구 산업전도 실무목사가 산업체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 일도 있었다. 예를 들면 산업전도활동 초기에 미왕산업에서 산업전도회가 조직될 수 있었던 데에는 미왕산업에 근무하는 간부사원 또는 근로자 중에 도림교회 교인들이 많았던 것, 특히 김용백과 같은 간부 사원이 도림교회 교인이면서 영등포 산업전도 평신도연합회 총무였다는 것, 그리고 미왕산업의 사장 임정홍의 부인 박주령이 도림교회의 독실한 교인이었다는 사실이 큰 작용을 했다.
산업전도의 명칭이 1971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제 56회 총회를 통해 산업선교로 바꾸어지고 교단의 산업전도활동 초점이 노동자의 권익 옹호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산전활동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심해졌다. 그러나 도림교회에서는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교회의 산업인들과 산업선교 실무목사들과의 연계를 지속시켰다. 이러한 도림교회의 산업전도회 일에 이만영 장로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정봉덕 장로<염천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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