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중요한 회의에 몇 번 빠진 일이 마음에 걸려 지난 달 회의차 고속철로 서울엘 간 적이 있다. 그동안 6개월이나 보지 못한 두 딸 집에서 하루씩 자면서 아이들도 만나기로 아내와 계획을 세웠다.
삼성동에 사는 막내가 일차를 냈다고 승용차로 마중 나왔다. 만나면 언제나 코로나가 화두다. 어디서나 상황이 안 좋으니 늘 조심해야 된다며 신신당부다. 징그런 코로나 얘기를 흘려 듣는다. 나는 손주 만날 마음에 지금 가슴이 쿵당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해 전속력을 다해 내 품으로 달려들 손주를 상상하고 현관에 들어섰는데 아니 뻘쭘하게 서서 날 쳐다만 보고 있다.
“세하, 오랫만이야. 우리 뽀뽀해야지”
그 때 손주가 큰소리로 내게 말했다.
“공기뽀뽀~”
뽀뽀도 비접촉으로 해야 된다는 뜻이라고 딸이 말해 준다.
전후 설명도 없이 “공기뽀뽀”를 외치는 아이를 보며 팬데믹(pandemic)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애들은 애들이다. 아이들은 빨리 친해진다. 그리고 잘 웃는다. 경계선을 빨리 허문다. 주님이 왜 천국이 어린아이들과 같은 곳이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린 급속도로 친해졌다. 게임도 하고 영어공부도 옛날 실력으로 체면유지는 했다. 가지고 있는 장난감을 모두 설명해 준다. 그 중에 공룡이 압도적이다. 질문이 많은 아이에게 대답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침에 회의 장소인 백주년기념관으로 출발하기 위해 서둘렀다. 이제 또 잠깐 헤어져야 될 시간이다. 그런데 웬일인가. 세하가 갑자기 내 두 귀를 잡더니 볼따구에다 뽀뽀를 해 준다.
“안돼. 공기뽀뽀해야지…”
“아니예요. 오늘은 이렇게 할거예요”
우리는 하룻밤 새에 접촉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순간 가슴이 뭉클해 그만 울뻔했다.
내 막내딸은 공기뽀뽀를 언택트(untact) 뽀뽀라고 웃으며 말해 준다. 언택트는 비대면 접촉을 뜻하는 조어로써 ‘접촉(contact)’이라는 말과 부정을 뜻하는 ‘un’을 결합해서 만든 말이라고 했다. 무인기기나 인터넷의 사용이 증가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직접적인 대면 접촉이 줄어드는 양상을 의미하는데 이 말은 몇 년 전부터 생겨난 신조어라고 했다.
‘언택트(untact)’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된 요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비접촉이란 말은 인간 세상에 가장 마음 아픈 얘기이다. 혼술 혼밥족이 늘고, 함께 사니 불편해 이혼하는 독신이 늘고, 졸혼이란 말도 이젠 생소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극단적 이기주의가 소시오패스의 세상을 만들고 나라와 나라 사이도 보호무역이 대세가 되어 점점 관계 발전과 협치가 어려워지고 있다. 모이고 만나고 함께 밥먹고 악수하고 반가워 껴안고가 어느날 실종되었다.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한 자'(엡 3:6)가 되야 될 함께가 팬데믹의 공격으로 이미 치명타를 입었다.
하지만 비대면 비접촉이 우리의 사랑과 섬김에 거리를 두지 못한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아들을 주시기까지 날 사랑하시는 그 사랑이 결코 끊어질 수 없다고 믿는다. 비접촉이 마음의 거리까지 멀게 해선 안 된다. 내 볼따구를 두 손으로 잡고 뽀뽀해 준 세하의 얼굴이 계속 눈 앞에 아른거린다.
남택률 목사<광주유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