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兄 김현승의 신앙과 고독(下) 견고한 고독, 절대 신앙 김현승은 한국 시단에서 철학적 사유로 자신만의 독보적 세계를 구축한 특유의 시인이다. 개신교…
문학산책
차돌같이 단단하고 이슬같이 투명한 언어 올해는 다형 김현승(金顯承) 선생님이 타계하신지 49주기(週忌)가 되는 해이다. 내가 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70년대 초반이었다.…
‘이모씨’는 ‘이모님’이신가요 이 원고를 쓰고 있는데, 소설가 한강 씨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는 뉴스가 떴다. 한국인이 한국어로 쓴 소설이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니 이…
대화는 소통의 요건이다. 언어나 기호 따위가 없다면 소통에 큰 지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한국인이 쓰는 한국어는 한자어와 한글로 구성되어 있다.…
6.25때 북으로 끌려가다 “나는, 나라도 민족을 위해 일본놈들한테 붙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는 변명할 수 없다. 내가 지은 업보는 내가 감당할거다”(유재원…
허영숙 여사•막내 이정화 교수와의 인터뷰 내가 작가 이광수의 부인 허정숙(許英肅) 여사를 인터뷰한 것은 1970년 전후였다. 효자동 집으로 찾아간 날, 마침…
‘민족개조론’과 ‘조선야소교회의 결점’ 작가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의 인생 여정은 복잡다단했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생애의 원형이랄 수 있는 시대관, 종교관과 가족관계를 간추려 적시(摘示)한다. …
“나는 장인(匠人)이 아니고 사제(司祭)다” 구상 시인의 첫 시집 <具常>의 ‘自序’ 말미에서 시집 출간이 두 차례나 중단되는 사건을 암시하고 있다. 출판계약으로…
은혜로운 한국어 “사철에 봄바람~” 내가 소설가 전영택 목사를 처음 뵌 것은 ’60년대 초 종로2가 기독교서회 지하다방에서였다. 전영택 목사는 1968년 1월…
일본천황에게 충성문 강요받자 절필 청년 전영택은 18세에 일본으로 유학 靑山학원 신학부(감리교계)를 졸업하고 귀국해 목사안수를 받았다. 1919년 3월 1일 동경유학중 유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