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종교개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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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후 벌써 500년이 지났다. 그가 악법을 고치자고 주장했을 때 오히려 반역자로 취급받아 죽임을 당하게 되었으나 뛰쳐나오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루터를 데려다 깊은 성안에 숨겼다. 루터는 거기서 오랫동안 숨을 죽이고 살았다. 그러나 두려움으로 숨어 있지 않고 거기서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이것이 루터의 종교개혁 성과라 할 수 있다.
종교개혁가는 마르틴 루터 한 사람이 아니었다. 대표적인 종교개혁가는 요한 칼뱅과 울리히 츠빙글리를 든다. 그 후에도 종교개혁가들이 여러 명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도 여러 곳에서 종교개혁가라고 불리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수도사의 삶을 산다. 수도원은 기독교 역사에서 속사도 후에 만들어졌다.
수도사의 원조는 예수님이시다. 그는 광야에서의 40일 금식기도 하셨고 그 후에도 자주 새벽에 산에서 기도하셨다.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났을 때 여호와의 메시지를 받고 십자가를 지시기 전 40일 동안 앞장서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한 걸음은 수도사들의 행진이었다. 그 후 겟세마네 동산에서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시는데 피와 같은 땀을 흘리며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 기도하셨고 마지막은 무덤 속에 3일간 수도사로 누워 계셨다.
종교개혁가는 수도사들이었다. 수도원의 삶은 세상과 거리를 두고 오직 하나님과 개인으로 대면한다.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을 명상하며 기도하고 노동한다. 수도사의 삶은 먼저 엎드려서 고요히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한다. 예레미야는 “입을 티끌에 대고” 회개했다.

다음은 겸손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서 세리의 기도를 들으셨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겸손하며 가장 정직해야 한다. 자기의 죄를 조금도 숨김없이 회개한다. 겸손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받으신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정직하면 사람 앞에서도 겸손하고 정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제력이다. 나를 극복해야 한다. 수도사들은 자신을 압박했다. 자신을 마귀의 노예라고 생각할 만큼 억제한다. 자기와의 싸움이다. 성령의 열매 중에 맨 나중이 “절제(Self-control)”이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앞에 있는 열매들을 다 맺어도 맨 나중 “절제” 열매를 맺지 못하면 앞의 열매가 모두 미완성이 된다.
종교개혁은 거창한 신앙의 역사이다. 종교개혁가들을 높이 존경한다. 그들은 회개하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들이었다. 하나님께서 내 편이 되어 주시기를 바라지 않고 내가 하나님 편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루터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고요히 외쳤다.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고 예수님을 본받는 사람이 오늘의 종교개혁가이다. 나를 개혁하는 사람이 진정한 개혁가이다. “너는 개혁되어야 한다”라고 지적하는 사람은 가장 개혁이 먼 사람이다. 개혁은 내가 먼저 해야만 한다. 내가 구원을 받아야 남을 구원할 수 있다. 내가 먼저 개혁되어야 다른 사람을 개혁할 수 있다. 내가 개혁되어야 사회를 개혁할 수 있다. 하나님 편에 섰을 때 나를 개혁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사람이 자신을 개혁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나를 부르셨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선인은 자신을 개혁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개혁하는 사람이 선한 일을 할 수 있다.
“종교개혁가?” 누구인가? 자신을 개혁하는 사람이다. 오늘 한국교회에서 자신을 개혁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먼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을 개혁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한국교회 아니 대한민국을 개혁하게 해 주실 것이다. 종교개혁가는 나라와 세계도 개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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