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필자는 전운이 감도는 이라크를 위험을 무릅쓰고 답사한 일이 있었다. 신문에 연재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였다. 당시 이라크는 비행금지구역으로 제재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항공편으로는 이라크를 갈 수가 없었다. 유일한 길은 요르단에서 육로로 가는 것이었다. 동이 트기 전 이른 새벽 요르단의 수도 압만에서 출발해서 이라크 국경을 넘어 총 900km의 사막 길을 달려서, 유프라데 강변의 도시 라마디(Ramadi)에 도착했다. 라마디는 인구가 20만이 넘는 도시로 이라크 서부 사막으로부터 유프라데 강을 건너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관문이다.
라마디에서 다리를 통과해서 유프라데 강을 건너면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다리를 건너자 눈을 의심케 하는 경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때까지 하루 종일 달려온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황량한 사막 지대와는 달리 푸른 숲과 우람스런 나무들이 울창하고, 10m 이상은 족히 될 대추야자수들이 곳곳에 큰 숲을 이룬 것이 눈에 들어온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형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신기할 정도이다.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비옥하고 기름진 땅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런데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지형적으로 또 다른 특이한 점이 있다. 언급한대로 유프라데 강 서편 지역은 광활한 사막 지대이다. 한편 티그리스 강 동쪽은 거대한 자그로스(Zagros) 산맥이 남북으로 비스듬히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다시 말하면,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서편은 사막이고, 동편은 험준한 산악 지대이다. 그 사이에 풍요로운 땅 메소포타미아가 위치해 있다.
필자가 바라본 유프라데 강과 티그리스 강의 강물은 한국의 강물처럼 맑은 물이 아니다. 흡사 흙탕물과 같이 보인다. 특히 티그리스 강물은 누런 황토색의 진흙탕물이었다. 바로 이것이 메소포타미아를 비옥한 땅으로 만드는 비결이다. 두 강이 상류로부터 비옥한 진흙 토양을 쓸고 내려오기 때문에 강물이 흙탕물이 된 것이다. 우기에는 주기적으로 두 강이 범람해서 메소포타미아의 토양을 비옥한 충적토로 만든 것이다.
메소포타미아는 지형적으로 크게 남과 북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 전역에 험산 준령은 없지만 그래도 북부 메소포타미아에는 높지도 않고 산세가 험하지도 않은 산들이 눈에 띈다. 그러나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바둑판처럼 평평한 땅으로 지형이 변한다. 완만한 경사의 나지막한 구릉은 눈에 뜨이지만 높은 산이나 산악 지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끝없이 광활한 평원이 시계에 들어올 뿐이다. 특히 두 강의 하류 지역, 즉 메소포타미아의 남단 지역은 옥토 중에서도 가장 비옥한 충적토 지질의 옥토 평원이다. 면적으로는 메소포타미아의 약 20% 정도를 차지한다. 이 지역을 고대인들은 ‘수메르(Sumer)’라고 불렀다. 고대 4대 문명 중 하나가 되는 ‘수메르 문명’은 바로 이 지역에서 꽃을 피웠다. 구약성경은 이 지역을 ‘시날 평지’라고 부르고 있다. 창세기 11장의 바벨탑의 무대가 되는 ‘시날 평지’가 바로 이 지역이다. ‘수메르’ 또는 ‘시날 평지’에서 가장 중요한 중심 도시는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지역은 ‘갈대아’(Chaldea)라고 불리게 되었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