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창] 바이든의 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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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46대 대통령에 당선된 민주당 조 바이든의 본명은 조셉 로비네트 바이든2세이다. 그는 1942년 11월 20일 미국 펜실베니아주 스크랜턴에서 태어났다. 사업가 아버지 밑에서 어려울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1950년대 석탄생산과 철도파업으로 타격을 받으며 가세가 기울었다. 그의 아버지는 보일러 청소도 하고 중고차 딜러를 하며 가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했다. 바이든은 그런 아버지로부터 강인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했다. “챔피언은 얼마나 많이 쓰러지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빨리 일어나느냐로 결정된다.” 어린 시절 그는 말더듬이 심했다. 친구들의 놀림도 많이 받았다. 바이든은 말더듬을 고치기 위해 입에 돌을 물고 다녔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책 읽기를 시킬 것으로 보이면 사전에 읽어야 부분을 외워갔다. 그리고 책 읽기를 했다. 바이든은 13살 때 아버지를 따라 델라웨어 메일필드로 이사갔다.

그곳에서 아치미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가톨릭 명문이었다. 그는 학교를 다니며 학비를 벌기 위해 창문을 닦고 잔디 깎는 일도 했다. 그가 덩치는 작았지만 미식 축구팀에 들어가 선수 생활을 했다. 그가 몸 담았던 아치미어 고교팀은 당시 무적의 전설로 남아있었다. 당시 코치는 그를 대단히 말랐던 학생으로 기억하고 있으며 “최고의 리시버” 였다고 했다. 바이든은 델라웨어 대학에 진학해 역사와 정치학을 공부했다. 그곳에서도 미식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그는 1961년 존 케네디 대통령이 학교를 방문, 그곳에서 한 연설을 듣고 자신도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의 설득으로 상원의원에 도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도전했다. 그리고 당당히 상원의원이 됐다. 하지만 그에게도 불행히 닥쳐왔다. 그해 크리스마스가 한 주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부인과 세 명의 자녀들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기 위해 시장에 가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대형사고였다. 그 사고로 부인과 두 아들은 크게 다쳤다. 그토록 사랑했던 부인과 가족을 잃었던 것이다. 바이든은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했다고 전한다.

이듬해인 1973년 델레웨어주 민주당 연방 상원의원에 취임했다. 취임순서는 아들이 입원해 있던 현지 병원에서 했다. 그는 남은 두 아들과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윌밍턴에 남았다. 매일 기차로 워싱턴으로 출근했다. 그러면서도 직무에 충실했다. 그는 1977년 두 번째 부인인 질 제이콥스와 재혼했다. 그녀와의 사이에 81년 딸이 태어났다. 아픔을 그렇게 묻고 살았다. 조 바이든은 아픔과 고통을 딛고 일어선 거장이다. 80세의 나이로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2007년 대권후보에 도전했다. 하지만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가 후보에 도전하면서 그는 빛을 발하지 못했다. 기회는 그때 그를 찾아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후보가 그를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선택했다. 조 바이든은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으로 8년간 봉직했다. 그것은 그에게 대권도전 기회를 확장시켜 주었다.
바이든은 친환경정책에 앞장섰고 불법이민자에게 보험혜택도 약속했다. 앞으로 한반도 정책의 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바이든은 미국에서 정치를 50년간 한 인물이다. 능수능란한 정치적 수완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미국을 다시 존경받는 나라로 만들 것이다. 우리에게도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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