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지구라트(Ziggurat)’란?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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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한국을 떠나 요르단을 거쳐 이라크 바그다드로 가서 다시 400km를 달려 갈대아 땅 ‘우르’까지 갔다. 그러나 막상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에 도착했을 때, 유적지로 들어가는 길을 이라크 군대가 막고 있었다. 임박한 전쟁(2003년 제2차 걸프전쟁)에 대비해서 이라크 군대가 우르의 유적지를 군사기지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철조망을 넘어 영국의 고고학자 레오날드 울리(L. Woolley)가 발굴해 놓은 유적들과 ‘우르’의 유명한 왕 ‘우르 남무(Ur-Nammu)’가 세운 거대한 ‘지구라트’가 멀리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철조망이 가로막고, 이라크 군인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그렇다고 불원천리하고 달려온 길을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이럴 때 기지와 용기가 필요했다. 필자는 경비병에게 그 부대의 책임 장교를 만나고 싶으니 연락을 하라고 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장교 한 사람이 입구까지 걸어 나왔다. 필자의 진지한 설득력이 주효했던지 유적지를 답사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은, 그곳이 군사시설이므로 사진은 절대로 찍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장한 사병 한 명을 내게 배치해서 나를 감시하게 했다.

필자는 이라크로 출발하기 전, 고고학자 울리가 우르를 발굴한 기록을 자세히 공부하고 갔기 때문에 왕궁 터와 왕들의 무덤 현장을 꼼꼼히 둘러볼 수 있었다. 거대한 규모의 왕궁들은 모두 진흙 벽돌 건물이었다. 얼마나 진흙 벽돌을 단단하게 잘 구워 만들었는지, 4천 년 이상이 지난 오늘날까지 상당 부분 원형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진흙 벽돌 사이마다 시멘트 역할을 하는 검은색 역청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수천 년의 시간이 압축된 느낌이었다.
우르의 유적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거대한 규모의 지구라트(Ziggurat)이다. 한국어로 이를 ‘탑’이라고 번역하지만, 지구라트는 한국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탑과는 전혀 개념과 용도가 다르다. 우르에서 발굴된 지구라트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사각형 모양인데, 전면의 길이가 무려 60m나 되고, 측면은 45m에 이른다. 이러한 웅대한 구조물에 계단이 있고,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형태이다. 높이는 현재 21m 부분까지 남아있다. 고고학자들은 원형의 높이는 60m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한다. 현장에서 본 지구라트는 사람을 압도하는 거대한 구조물이다. 이것도 진흙 벽돌을 정교하게 쌓아 건축한 것이다.
그런데 지구라트는 우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르 근처 지역을 비롯해서 메소포타미아 지역 전역에 거의 20개소에 이르는 지구라트 유적이 남아있다. 그 지역의 각 도성들마다 중심부에 지구라트를 세웠던 것이다. 그들은 무슨 목적으로 지구라트라는 거대한 구조물을 세웠을까?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삶의 중심은 신(들)을 섬기는 종교였다. 신을 섬기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드리는 제의(祭儀)였다. 그런데 고대인들에게 신들은 ‘높은 곳’에 있는 존재였다. 따라서 높이 올라갈수록 신의 영역과 가까워진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제의 장소는 반드시 산과 같이 높은 곳이어야 했다. 그런데 수메르 지역은 워낙 평평한 평야라서 산다운 산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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