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참으로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봄이 되었을 때 농부들이 논과 밭에 나가서 씨를 뿌리던 때가 눈에 선한데 벌써 여름 지나가고 가을인가 했는데, 어느새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마태복음 3장에 하나님께서는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은 불에 태우시리라 말씀했다. 농사를 짓는 농부는 하나님이요 알곡은 믿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이요 쭉정이는 형식적인 신자들을 비유하여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것은 알곡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하신 말씀이다.
알곡이나 쭉정이는 외관상으로 보면 똑같이 보여도 알곡에는 생명이 있고 쭉정이는 생명이 없다. 아무리 많은 씨앗을 논밭에 뿌려도 생명이 없는 쭉정이는 그대로 썩어 버리고 만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알곡은 싹을 낼 수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인간의 생명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은 생명으로 태어났다. 살아서 숨은 쉬고 있으나 실상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다. 그러므로 죽은 생명을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생명이 있는가 아니면 생명이 없는가, 생명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며 생명이 없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생명이 있는 알곡 신자는 세상의 유혹을 이기며 세상을 거스르며 살아간다. 그러나 쭉정이 신앙은 세상의 풍습을 따라서 세상에 물들어가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간다. 유혹이나 시험을 이길 만한 능력이 전혀 없다. 그 이유는 생명이 없는 쭉정이이기 때문이다.
벼가 누렇게 익어있는 논에 가보면 알곡일수록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있으며 쭉정이는 고개를 들고 있다. 벼 이삭이 처음 나올 때는 고개를 들고 나오지만 알곡이 되면 될수록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알곡 그리스도인일수록 겸손해지고 알곡이 아닐수록 교만하다는 것을 교훈하여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한다.
쭉정이 신앙과 교만한 사람은 전혀 자신의 죄 문제에 관심조차도 없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자이다. 알곡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언제나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대로 살지 못한 것 때문에 가슴 아파하고 다른 사람들의 허물과 죄를 보면 거울로 삼고 자기 탓으로 여기면서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를 부둥켜 안고 하나님 앞에 중보로 기도하는 자가 알곡 그리스도인이다.
권용길 장로
<강원동노회 장로회장·덕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