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사회적 인연에 따라 모이는 각종 모임들이 있다. 이런 모임에 빠지지 않는 순서가 있다. 건배사다. 나이가 들고 보니 나는 자주 건배사 제의를 받게 된다. 사전에 귀띔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갑자기 지정받는 경우도 많다. 제의를 받으면 머뭇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나가면서 순간적으로 생각한다. 할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구호만 외치기도 한다. 건배는 건강과 행복 그리고 희망을 기원하는 것이다.
흥을 돋우며 시대상을 담아 풍자적으로 표현해도 좋다. 흔히들 “00을 위하여”가 제일 많이 인용된다. 영어로는 Cheers 또는 Bottoms up이라고 하고 일본은 간바이, 불어로는 상테, 이태리는 살루트, 독일은 프로스트라고 외친다. 헝가리에서는 맥주로 건배를 하지 않는다. 1848년 오스트리아 지배 하에서 혁명의 주역이었던 헝가리 장군 13명을 하나씩 죽일 때마다 오스트리아 병사들이 맥주로 건배를 했던 슬픈 역사 때문이다. 그래서 150여 년 동안 맥주로 건배를 금기시해 왔다.
건배사는 짧고 간결하며 재미가 있어야 한다. 길게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1분 이내면 좋다. 회식 자리에서 건배사 하나가 화두가 되기도 하고 좌중을 웃기며 분위기를 일시에 up시키는 촌철살인의 건배사들도 있다.
삼행시가 많다. 예를 들면 나가자, 싸우나, 재건축, 개나발, 오징어, 해당화, 사이다, 이기자, 청바지, 마당발, 지화자, 지성전, 마피아, 명승부, 변사또, 비행기… 등 3행시 구호들이다. 사자성어격 표현들도 있다. 한우갈비, 당신 멋져, 흥청망청, 빠삐따용, 전화위복, 선후창이나 분창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하나다. 이멤버/리멤버, 스페로/스페라, 카르페/디엠, 마쿠나/마타타 등등…….
요새는 성 관련 건배사는 조심해야한다. “오바마” 하면 “오직 바라고 마음먹은 대로”라는 의미다. “오늘은 오버하지 마라”도 있다. 그런데 몇 년 전 남북 이산가족 상봉시 적십자부총재가 이 구호를 외치고 나서 물의가 돼 공직에서 물러나게 된 일이 있다. 그 내용인즉 “오빠 바람피우지 마세요”까지는 괜찮은데 “오빠 오늘 바라만 보지 마시고 마음대로 해” 한 것이 문제였다. 가족들이 만나는 공식 만찬 자리에서 분위기 띄운다고 성 관련 개그로까지 비약한 것은 지나쳤던 것이다.
우리 부부는 이대로 고대로 그렇게 살자고 한다. 梨大로 高大로다. 고대인들은 00을 위하고로 하고 “고” “고고” “고고고” 하기도 한다. 서울대나 서강대는 위해“서”라고 한다고 한다.
필자는 가정 관련해서 “나는 아내를 위한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해서 박수를 받기도 한다. 내가 아는 등산복 회장은 늘상 “백두산”을 외친다. “백살까지 두발로 산에 오르자”이다. 바로 엊그제 있었던 일이다. 몇 사람이 건배사를 했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게 있다. 한 분이 “나라가 이러니 나라도 잘하자” 해서 박수를 받았다. 이어서 또 한 분의 건배사가 있었다. 뉴스 시간에 품격없는 함량 미달의 장관 얼굴이 제발 더 이상 보이지 않으면 나라가 평안해지겠다며 “더보법” 하니 “더나법” “보사법” 후창이 이어졌다. “더나법, 보사법” 3행시는 무엇일까? 그것은 독자들의 상상과 생각에 맡기자.
두상달 장로
• 국내1호 부부 강사
• 사)가정문화원 이사장
• 국가조찬기도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