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도사]“제자를 키워주시고 세워주시며 이끌어주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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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전까지만 해도 제가 추도사(追悼辭)를 쓰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늘 건강하신 목사님의 모습만 생각하고 언제라도 무엇이든지 질문하면 상세하게 원문 해석을 더해서 답해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1968년 장신대 입학시험 면접할 때 교무과장 박창환 교수님과 주선애 주임교수님을 처음으로 만나 뵙게 된 날이었습니다. 박 목사님은 조용한 미소로 시골에서 온 여전도사를 편안하게 맞아주셨습니다.
우리가 졸업반이 되었을 때 박창환 교수님은 현수삼 사모님과 어린 막내아들을 데리고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가신다고 마펫기념예배당에서 선교사파송예배를 드리고 제가 학생대표로 꽃다발을 드렸을 그때도 박 목사님은 조용한 미소로 답하셨습니다. 교수하시다가 다 내려놓고 선교사로 떠나시는 목사님이 부러웠습니다. 박창환 선교사님! 내년이면 인도네시아 제1호 선교사로 파송 받아 선교 현지에 터를 닦고 기초를 세우신지 50주년이라고 현장에 나가있는 수백 명의 제자 선교사들은 목사님을 모실 만반의 준비를 했답니다. 그동안 인도네시아와 세계 곳곳에 선교의 모퉁이 돌(Cornerstone)을 세워두셨으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그 열매를 거두실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목사님!
1972년부터 저는 영락교회 전도사로 섬겼습니다. 박 목사님께서 선교지에서 돌아오시자 영락교회에서 귀국 설교하셨는데 마태복음 28장 끝에서 선교의 본질과 선교의 대위임을 쉽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선교는 숫자나 양이 아니라, 질과 내용 곧 말씀과 진리입니다. 선교의 대상은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의 제자로 삼는 것이며 주님은 세상 끝 날까지 선교하는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저는 지금도 목사님의 그 진지하고 참된 진리의 말씀이 듣고 싶습니다. 목사님!
제가 10년 동안 긴 유학길을 마무리 할 즈음에 목사님은 장신대 13대 학장이 되셨습니다. 미국까지 친히 찾아 오셔서 제자인 저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고, 함께 선교의 비전을 나누고 구체적으로 당면한 선교사훈련의 필요성과 긴급성, 신학대학원에 선교학 부전공 개설과 세계선교대학원을 신설하여 선교 일꾼을 키워내는 꿈을 나누었던 그날을 새롭게 돌아봅니다. 그날, 우리가 꿈꾸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위대한 선교를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목사님을 통하여 우리를 쓰시며 일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박창환 학장님의 선교 열정은 저를 계속 움직이게 했습니다. 1986년 장신대로 불러서 세계선교연구원 선교사훈련담당 부원장, 원장으로서 2011년 2월까지, 총회파송선교사훈련 1기에서 29기까지 훈련시켜 수료하고 파송하도록 박학장님은 저에게 자리를 깔아주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우리는(2020.11.20.) 장로회신학대학교 국제회의장에서 故 박창환 학장 추모예식을 마치고, 제66기 총회파송선교사훈련 수료식을 했습니다. 목사님! 그렇게 시작했던 선교사훈련이 35년간, 수많은 선교사들이 훈련받았고 앞으로도 지속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목사님!
2011년 3월 개교한 주안대학원대학교 초대총장으로 섬길 때 저를 격려하시고 기뻐하시면서 이듬해(2012)에는 박 학장님께서 친히 오셔서 학생들과 함께 지내시고, 침식을 같이하며,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집중강의를 빈틈없이 해 주셨습니다. 박 학장님은 개인적인 관심과 관계를 잘 하셨습니다. 식사시간에는 학생선교사들과 평생토록 잊을 수 없는 대화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목사님!
박창환 학장님은 순교자 박경구 목사님의 장남으로서 진정한 그리스도의 증인(순교자)으로 사셨습니다. 박 학장님은 5대 목사와 5대 선교사의 가문을 이어 온 중심기둥이 되셨으므로 제5회(2015) The Light Mission Award, 더라이트미션 선교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박학장님은 1948년부터 最年少, 90세가 넘도록 最年老, 70년 이상 강의하신 最長 교수로서, 장신대 교수뿐만 아니라 전국 초교파적으로 헬라어를 공부한 모든 신학생들과 세계 흩어진 모든 한국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의 교수였습니다. 존경합니다. 참스승이신 교수님!
박 학장님은 자상하시면서 제자를 키워주고 세워주며 이끌어 주셨습니다. 제가 은퇴하면서 ‘Retire’가 아니고 ‘Re–Tire’ 타이어를 바꾸어서 다시 생~하고 달리겠다는 저를 미국에 있는 Hudson Taylor University에 소개하시고 2대 총장으로 섬기도록 옆에서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어느 날 막내아들 박선진 목사가 네브래스카주 오마하한인장로교회의 청빙을 받아 아버님 박목사님을 모시고 애틀랜타를 떠나 새로운 임지로 가셨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목사님!
그곳에서 코로나 때문에 매우 어려운 시기임에도 마지막으로 예배당에 가셔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오셔서, ‘아들아, 이 땅에서 나의 삶은 여기까지이니 병원에 데려가지 말고 조용히 집에서 나를 지켜라’는 말씀을 따라 ‘아버님께서는 몇 일전부터 의식을 놓으셨습니다. 호스피스가 home care를 시작했습니다.’ 그 소식 듣고 조용히 기도드렸습니다.
‘세상사는 동안에 나와 함께하시고 세상 떠나 가는 날 천국가게 하소서’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믿습니다.(고후 5:1)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제자 이광순 올립니다.
2020.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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