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동창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우정을 유지했던 친구로부터 일흔 살을 막 넘기면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전갈을 받았다. 병문안을 하려고 했더니, 잠시만 기다리라는 연락을 듣고 걱정을 하면서 기다리던 중 폐암3기 진단을 받고 수술 후 입원하고 있다는 엄청난 소식을 그의 부인으로부터 들었다. 얼마 후 일단 문병은 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몇 명이 함께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본 그의 얼굴은 많이 수척했다. 감기에 걸린 듯이 기침이 많이 나고 열이 나기에 동네 의원을 찾았더니, 빨리 큰 병원으로 가라는 의사의 권유를 따라 종합검진을 받아보니 뜻밖에 중병 진단을 받아 서둘러 수술을 받았고, 다행히 수술 결과가 몹시 좋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큰 고비는 넘겼으니 의사의 치료에 따라서 투병생활을 하면 힘들어도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했다. 함께 방문했던 친구들은 환자를 피곤하게 해서는 좋지 않다는 의견으로 일단 자리를 떠나기로 했다. 인사하고 나서려는 우리를 향해 “백 장로가 기도는 해 주고 가야지” 하는 그의 말에 다시 침대에 둘러섰다. 지금까지 그는 독실한 신자인 부인의 요청에도 교회에 다니지 않았고 마침 문병을 간 4명의 친구 중에 한 명만 신자인 처지에 그의 기도 요청은 의외였지만 우리는 친구의 완쾌를 위해 한마음으로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그때부터 반드시 병마를 이기겠다는 불굴의 의지력으로 점철된 그의 투병생활은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그가 했던 일은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치는가?’라는 회의감을 물리치는 일이었다. 이를 빠른 시간에 해결하고는, 그동안 한귀로 흘려버렸던 부인의 권유를 마음속에 다시 새겨 하나님께 의탁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의사의 진료에 어린아이처럼 순종해서 열심히 치료를 받았다. 치료하는 일이 상당한 고통을 수반하지만 이에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견뎌 냈다. 그러면서 항상 긍정적이고 완쾌를 확신하는 믿음을 간직하면서 어려운 시간을 극복했다. 물론 나도 함께 기도로 그의 치료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후에 드디어 그는 우리가 준비한 조촐한 식사 자리에서 ‘졸업을 축하한다’라고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감동의 완쾌 소식을 함께 나누었다. 그 후 벌써 몇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지금도 걷기에 열중하고 모든 의학적인 치료에 충실함으로 그의 건강은 오히려 다른 친구들보다 더 좋게 보이는 형편이다. 본인과 그의 가족들의 간호의 힘이 기본이 되어 이룬 쾌거지만 그동안 그의 완치를 위해 꾸준하게 격려한 주위의 기도의 힘과 이를 이루어주신 하나님의 응답을 사랑으로 느낀 감격이었다.
꽤나 오래전 청년회에 속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때였다. 임원회에서 전도활동으로 교회에 출석하지만 열의가 식은 교인을 심방하자는 결정을 하고 회원 몇 명이 교회 인근에 혼자 사시는 한 노인을 심방하여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몇 곡 들려드리고 약간의 덕담을 나누고 돌아왔다. 그러나 인사하고 나올 때에 그의 표정은 그리 밝지가 않았다. 교회에 돌아와 심방 결과를 평가하면서 느낀 것은 그 노인은 찬양을 듣기보다는 오히려 한 끼의 식사가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극빈자라는 현실을 우리가 간과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그에게는 기도와 찬양도 중요하지만 지금 절실하게 필요한 ‘한 끼의 밥’을 받는 것이 그가 평소에 드리는 기도의 응답이라고 깨달았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