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리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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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의 조건으로 재물과 건강을 꼽는다. 다음으로 권력과 명예를 말한다. 그러나 죄악에 빠져 있거나 세상 올무에 걸려 있으면 그 마음은 불안에 휩싸여 결코 행복한 마음이 될 수 없다. 육신적인 정욕에 타협, 굴복하면 잠시 동안은 만족해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이 불편하고 밀고 들어오는 양심의 가책으로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영혼의 은혜로운 정서로써 진리로 채움을 받기 위해 내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심령이 가난한 것은 세상의 부귀영화와 공명심을 비우고 예수로 내 마음을 채우는 것이다. 세상적으로는 가난하면서도 그 마음이 부유한 자들도 많다. 그러나 부유하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교만하여 투덜거리고 매사에 불평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빈곤에도 자족하고 비천에 처할 줄도 알아야 한다.(빌 4:12) 약한데서 영적으로는 온전해진다. 심령이 가난할 때 하나님의 지혜를 배운다. 그 불편함을 인내로 견디고 자족하며 내가 가진 것에 대하여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진실한 믿음이 주는 지혜이다.
세상의 부귀에 마음을 두지 않고 풍족한 상태에서도 닥칠 수 있는 재난과 실망스러운 일들에 대해서도 기꺼이 감내하는 자세가 심령이 가난한 자의 모습이다.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낮게 여기는 것이 가난한 마음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영적으로 가난한 상태였으나 스스로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책망을 받았다.(계 3;17) 바울 사도는 영적으로 은혜와 은사가 부요하였으나 매우 겸손한 마음이었다. 사도들 중에서 스스로 가장 작은 자로 여겼다. 모든 성도들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로 여겼다. 스스로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여긴 것이다.
철학은 심령이 가난한 겸손을 귀중히 여기지 않는다. 자존심을 가지라고 권한다.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최고의 인생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께서는 첫째가는 덕목으로 겸손을 말씀하신다. 심령이 진실로 겸손한 자만이 자기를 부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지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가능하다.
모든 은혜의 기초는 겸손이다. 복음의 은혜가 영혼 속에 들어갈 수 있는 마음은 바로 겸손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다. 스스로를 낮추고 또한 하나님께서 낮추어 주실 때 순종하는 자는 높임을 받을 것이다. 심령이 부하고 교만한 자는 세상의 영광에 온 마음을 쏟다가 그와 함께 망할 것이다. 겸손하고 온유하며 순종하는 심령을 가진 자는 천국의 영광을 소유하게 된다.
어쩌다가 오늘의 한국교회는 물량화되고 있다. 교인 수가 몇 명이고 일 년 예산이 얼마인가에 의해 목사가 평가되어지고 있다. 교회 안에서는 경제적으로 부(富)하고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사람이 더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헌금을 많이 내는 교인이 더 인정받고 칭송되는 것도 사실이다. 교회 건물은 날로날로 호화로워지고 있다. 현대화되고 있다. 교인 수가 많고 예배당을 크게 건축 잘하는 목사가 성공한 목회자로 평가되고 있다. 목회자의 삶도 겸허와 청빈이 아닌, 사치로 흐르고 있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머리 둘 곳이 없으셨던 우리 주님의 생애를 거룩한 두려움으로 깊이 묵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도들이 걸었던 길은 광야였다. 희생과 헌신의 길이었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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