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역사를 일별해보면, 하나님께 칭찬 받은 왕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그 수가 많지 않다. 칭찬 받은 몇 명 되지 않은 왕들 중에 극찬을 받은 왕이 있다. 유다 왕국의 14대왕 히스기야(주전 715~687/6)이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왕하 18:3-6) A+에 해당하는 높은 평가이다. 그는 ‘히스기야 왕의 종교 개혁’을 일으켜 부패한 이스라엘 신앙을 정화시키는 큰일을 했다. (왕하 18:4)
히스기야 왕이 이룬 업적 가운데, 오늘도 성지순례를 다녀오는 사람들이 반드시 들러보는 곳이 있다. 예루살렘에 있는 ‘히스기야 터널’이다. 히스기야는 앗수르 제국의 군대가 공격해올 것에 대비해서, 예루살렘의 유일한 수원(水源)이 되는 기혼 샘의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이는 터널을 만들었다. 기혼 샘의 물이 터널을 통해 성 안으로 흘러 들어와서 실로암 못(Pool of Siloam)이 만들어졌다.
히스기야 터널은 오늘날도 쉽게 풀지 못하는 몇 가지 놀라운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예루살렘은 원래 거대한 암반 위에 세워진 도성이다. 히스기야 왕은 예루살렘 성 안쪽과 성 밖에 위치한 기혼 샘 쪽, 양편에서 거대한 암석 지대를 깎아 파고 들어가서 장장 535m에 이르는 터널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중간 지점에서 터널이 만났을 때, 양편 바닥의 고저의 차이는 30cm도 되지 않았다. 신기한 일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기혼 샘이 높고 실로암 못은 낮아야 한다. 기혼 샘은 해발 636m이고, 실로암 못은 634m이다. 즉 양측의 고저의 차이가 불과 2m 밖에 되지 않는다. 기혼 샘의 물이 아주 완만하게 천천히 흐르도록 터널을 만든 것이다.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더 있다. 히스기야 터널은 직선으로 판 것이 아니라, S자 형으로 구불거리는 형태이다. 거대한 암석 지대를 양편에서 구불거리며 파 들어가서 중간 지점에서 정확히 만난 것이다. 현대 기술로도 쉽게 풀 수 없는 신기(神技)이다. (사족: 히스기야 왕은 터널을 파서 만든 과정을 돌판에 기록으로 남겨 놓았다. 유명한 ‘실로암 석비’(Siloam Inscription)이다. 그 기록에는 터널의 길이를 1200규빗이라고 했다. 오늘날 측량 결과 535m이다. 따라서 1규빗의 길이는 44.6cm가 된다. 구약시대 규빗의 길이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고고학적 증거이다.)
히스기야는 많은 업적을 남긴 극찬을 받은 왕이었다. 그러나 그도 한때 예언자 이사야의 진노를 살만한 행동을 한 일이 있었다. 이사야는 히스기야 왕의 행동 때문에 앞으로 유다 왕국에 비극적 재앙이 임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날이 이르리니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조상들이 오늘날까지 쌓아두었던 것이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는 계속해서 유다의 왕자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비천한 환관 노릇을 하게 될 것이라는 놀랄 말씀을 전했다.(왕하 20:16-18) 도대체 훌륭한 히스기야 왕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예언자 이사야가 이토록 진노에 찬 메시지를 전했을까?
박준서 교수<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