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7일에 코로나 팬데믹 상황하에서도 전 세계가 각종 행사로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했다. Ludwig van Beethoven을 인류가 낳은 가장 위대한 음악가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후대의 말러는 베토벤을 극복하겠다고 장엄한 교향곡을 10개 작곡했지만 그를 베토벤에 견주기는 어렵다. 40대 후반부터 청각에 이상이 와서 56세에 사망할 때는 거의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는데 이 10년 동안에 그는 최고의 작품들을 남겼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그는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음표 하나하나를 오선지에 찍어갔다.
초저녁 어둠 속에서 달맞이꽃이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는 어느 여인의 글을 읽었다. 마음이 매우 섬세한 듯, 글을 쓴 사람은 박완서 작가의 소설에서 등장인물이 달맞이꽃 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장면을 기억하고 자기도 낮에 보았던 그 꽃 무리 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가 가만히 기다렸더니 ‘펑’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는 것이다. 계속 조용히 있었더니 좀 더 잦은 간격으로 ‘펑’ ‘펑’ 하는 소리가 연이어 났다고 했다. 글 만으로는 소리의 크기를 헤아릴 수 없었지만 실제 들렸다면 아마도 환청에 가까운 들릴 듯 말 듯 한 아주 작은 음향이었을 것이다.
꽃피는 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향기가 피어나는 데서 소리를 듣는 사람도 있다. 불가의 청담 스님이 출가하던 즈음에 낳은 따님이 나중에 아버지를 찾아가 비구니가 되어 불교 교육계에서 큰일을 하였다. 이 妙嚴 스님이 낸 회고록의 책명이 「香聲」 즉 향기의 소리였다. “불가에서는 향냄새를 아름다운 소리와 같다고 해서 향성이라고 표현한다… 향로에 불을 담아 木香을 피우면 연기 올라가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꼬불꼬불 올라가기도 하고 옆으로 드러누워서 가기도 하고 곧장 위로도 올라가지. 그 향내를 맡는 것을 소리를 듣듯이 聞香이라고 그랬다”고 그분은 썼다.
향연(香煙)에서 듣는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시각을 통하든지 청각으로든지 마음에 울리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바로 소리이다. 베토벤은 최악의 상태였을 때에도 아주 낮은 소리와 아주 높은 소리에는 그의 청각이 반응을 했다고 하니, 상상컨대 그의 귀에 고작 달맞이꽃 터지는 소리 정도로 들려오는 음향을 받아 마음에서 울리는 소리와 더불어 화음을 만들어 온갖 종류의 악기와 사람의 음성을 위한 거의 모든 형식의 악곡들을 창작했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우리들의 기도는 머리에서 나와 가슴을 경유하며 소리와 이미지로 정리되어 다시 머리 속에 간직된다. 기도는 큰소리로 부르짖든지 묵도이든지 여러 사람과 함께하는 통성기도이든지 하나님께 상달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지만 그 차이는 사람의 귀에 들리는 소리가 아닌 마음의 소리와 믿음의 크고 작음에 있다. 기도를 하며 우리는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 때로는 하나님은 폭풍우 가운데서 우레와 같은 음성으로 말씀하시지만 그것은 욥과 같이 온 마음을 다하여 회개하고 자신을 바치는 자만이 들을 수 있다.
있는 듯 없는 듯한 달맞이꽃 피는 소리 같이 잔잔히 울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과 대화하는 인생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거기에는 천국의 향기가 감돌 터이다.
김명식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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