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현대 신학의 교부인 칼 바르트(Karl Barth/1886-1968)는 어거스틴, 토마스 아퀴나스, 루터, 칼빈에 비길 만한 신학자이다. 그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부목사(1909-1911년)로, 그 뒤엔 아르가우 지방의 자펜빌에서 10년 이상 목회를 했다. 그때 자본가의 착취와 노동자들의 비참함을 보고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복음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회정의와 평등이 실현되는 현실적인 나라로 이해했고, 그리스도의 복음 정신으로 그 지역의 불평등한 현실을 바꾸려 했다. 때문에 그 지역의 자본가와 공장주로부터 빨갱이 목사(red pastor)란 비판까지 받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독일에서 꽃폈던 자유주의 신학의 한계를 절감하게 됐다.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 중심적이고, 이성적이며 역사 내재적인 신학이었다. 그것은 인간의 종교성과 경건, 그리고 도덕적 능력과 문화창조 능력을 중요하게 여긴 반면, 하나님의 거룩성과 영광 그리고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소홀히 여겼다. 특히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기보다 인간의 종교 경험의 표현이며 인간 사회에 필요한 윤리 규범의 책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칼 바르트는 이런 신학과 성경 이해로는 설교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설교자로서의 고민과 한계를 느끼게 된 것이다. 오늘 우리는 그의 유명한 말 한마디를 상기하고자 한다.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한 손에는 신문을”이란 말이다. 어린아이들이 갖고 노는 지능적 장난감 중에 레고(Leg Godt)가 있다. 이 말은 덴마크 말로 “잘 놀자”(Play well)란 뜻이다. 쌓았다가 헐었다를 반복해가며 창의성을 자극 개발하는 놀이기구다.
신학이 교회 안에서만 머물면 안 된다. 성경(Bible)이 신문(Newspaper)과 함께 읽어지고 상관관계를 찾아내고 해답과 예측을 주고받아야 마땅하다. 신문만 읽으면 현실을 보되 그 이유와 결과를 알 수 없고 성경만 읽으면 공중에 떠 있는 에드밸런같아서 역사적 현실(here and now)에 적용되지 못한다. 그래서 비교적 성경적 원리를 현실과 접목시키는 일을 잘하는 유대인들을 살펴보면 좋겠다. 유대인은 교육혁명으로 AROMA(향기로운 유산 교육)를 시행한다. A(Affection/애정), R(Respect/존경), O(Order/질서), M(Merriment/즐거움), A(Affirmation/인정)로 대표되는 개념이다. 현재 미국의 400대 재벌 중 100명이 유대인이고, 유명 대학 총장의 90%가 유대인이며 미국의 노벨상 수상자 중 93%가 유대인이다. 구체적으로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 심리학자인 프로이드, 소아마비 백신 개발자 조니 삭, TV 발명자 데이비드 샤프노, 미술천재 샤갈, 천재 영화감독 스필버그, 정치가인 키신저나 올브라이트같은 국무장관들이 모두 유대인들이다. 유대인들은 일곱 빛깔 ‘무지개 교육’이라는 교육 방법을 실시한다. ① 아버지의 권위는 매가 아니라 지혜이며, 지혜는 칼보다 강하다는 ‘탈무드 지혜 교육’ ② 아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성적’이 아니라 ‘성품’이라는 ‘인성교육’ ③ ‘남을 이겨라’가 아니라 ‘남과 다르게 되라’며 차별화 시키는 ‘적성 교육’ ④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생, 친구와 친구가 서로 짝이 되어 계속 토론하며 배우는 ‘하브루타 교육’ ⑤ 도전과 실패를 용납하는 ‘창의성 교육’ ⑥ 교육의 목적은 사고하는 과정에로의 초대라면서 사고력을 이끌어내는 ‘독서교육’ ⑦ 푸슈케(구제함/상자)가 있는 유대인의 집이 표방하는 ‘공동체 교육’ ⑧ 음식만 먹이는 게 아니라 지혜도 먹여주는 ‘밥상머리 교육’(아버지가 주도함). ⑨ 잠자리에 들기 전 대화 시간과 책(성경과 동화책) 읽는 시간과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해 주는 베갯머리 교육(어머니가 주도함)이 바로 그것들이다.
버지니아 사피어는 “가정은 사람을 만드는 공장”이라 했다. 유대인은 가정에서, 신앙과 애국심과 모국어는 책임지고 가르친다.
김형태 박사
<한국교육자선교회 이사장•더드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