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신과 굿의 횡포에서 한국을 구해낸 기독교회
한국교회사 연구의 대가(大家) 솔내 민경배 박사는 1895년의 한국교회가 가져온 “한국 근대사의 빛나는 첫날”에 주목했다. 이때 한국교회는 세 가지 방향에서 사회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첫째, 괴질 치유이다. 둘째, 백정 해방이다. 셋째, 무당 미신에서의 해방이다. “1895년! 기독교가 민비 시해의 아픔을 함께 당하고, 종사(宗嗣)를 구하고, 역질(疫疾) 치유에서 인간애로 희생과 봉사로 동행하고, 백정과 같은 비탄의 계층을 해방하고, 굿의 횡포에서 나라를 건져냈다면, 확실히 1895년은 한국 근대사의 빛나는 첫 날이 아닐 수 없다.”
이 중 미신과 굿의 횡포에서 한국을 구해낸 기독교회의 활약상은 대단했다. 선교사들의 보고에 의하면, 1897년 현재 미신과 굿에 들어가는 비용이 “최소한 1천 2백만 달러에” 달했다. 그런데 당시 조정 세입은 약 452만 달러, 전국 지주들이 보유한 농토 평가액은 약 400만 달러였다. “그렇다면 1년에 전국의 농토가 세 번씩 사라지고 마는 결과가 된다.” 연간 나라 살림이 세 번씩 미신과 굿에 쏟아지고 있었다. 이런 나라가 어찌 가난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기독교가 이 미신과 굿의 횡포에서 한국을 구해냈다면 그것은 이 나라를 구원한 것이다.
2. 1927년 황주 주마(酒魔)정벌 행군식 대회
1925년 식민지 한국에 반기독교운동의 바람이 거셌다. 공산주의자들이 그해 10월 제2회 전조선주일학교대회를 겨냥하며 반기독교운동을 폭발적으로 일으키고 있었다. 이때 「기독신보」는 두 차례에 걸쳐 실은 “반기독교운동을 보고”라는 사설에서 기독교를 반대하는 것은 기독교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동포의 전도(前途) 개척을 저해하고 희롱하는 것임을 역설했다. “기독교를 반대하는 자는 즉 동포를 사랑하지 않는 자이다.”
이 사설은 당시 기독교가 한국에서 세 가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보았다. “첫째, 기독교는 금주 금연 운동으로서 조선의 동포를 구원하였다. … 둘째, 기독교의 건전한 가정문화는 당시 소위 식자층의 연애와 이혼이 점점 심해지는 현상과 청년계층의 유곽 출입과 그로 말미암은 패가망신 등의 풍기문란에 경종을 울렸다. … 셋째, 기독교는 조선에서 거짓 신과 우상에 바쳐지는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미망으로부터 조선을 구원하였다. …”
1925년 현재 한국은 1년에 술에 2억 원, 담배에 7천만 원을 쓰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식 교육에는 1천만 원을 쓰고 있었다. 자식보다 술과 담배를 스물일곱 배나 사랑한 것이다.
한국교회는 술과 담배로부터 한국을 구원해 내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1927년 11월 초 황주에서는 전(全)황주주일학교연합대회가 5일간 순회선전을 하고 있었다. 특히 11월 3일에는 “1천2백여 명이 참가하여” 주마(酒魔) 즉 술 마귀 정벌행군의 시가행진을 했다. 이는 “세계적으로 된 황주 금주선전”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는 창세 이래 처음 되는 주마(酒魔) 공판이 김화식” 목사 주재로 열리고 있었다.
류금주 목사
<(총회인준)서울장신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