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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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서 ‘미국소설’ 과목을 청강하면서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 1897-1962)의 장편소설『압살롬, 압살롬!(Absalom, Absalom!)』이라는 제목의 313면으로 된 장편소설을 공부한 일이 있다. 장편소설이다 보니 사건의 전개가 지루하고 당시 나는 구약성경을 체계적으로 읽은 경험이 없어서 사무엘하 18장에 나오는 ‘압살롬 최후의 비극의 역사’를 알지 못하였고 다만 영어단어를 찾아가며 소설의 개략적인 내용을 이해하느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친지 한 분의 조언으로 ‘사무엘하’ 전체를 읽고 나서 그 소설전체의 줄거리와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 소설내용의 핵심이 되는 사무엘하에 나오는 장면은 이러하다. 

다윗은 셋째 아들 압살롬을 극진히 사랑한다. 압살롬은 정말 아름답고 흠이 없는 자식이었으며 이스라엘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도 지혜가 있다고 칭찬 듣는 아들이었다. 압살롬에게는 ‘다말’이라는 예쁜 누이가 있었는데 훗날 압살롬이 자기 딸의 이름을 여동생의 이름과 같은 ‘다말’이라고 짓는데서 그가 얼마나 여동생을 사랑했는지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자기의 이복형이며 다윗의 맏아들인 암논이 자신의 누이를 겁간(劫奸)하자, 간교한 꾀로 암논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하인들을 시켜서 이복형을 죽임으로써 누이동생에 대한 복수를 한다.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심히 통곡하고 마음에 안타까움이 가득해 안절부절 한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향해 반기를 든다. 치밀한 계획 속에 쿠데타를 일으키고 아버지의 후궁들을 범함으로써 아버지와의 적대관계가 더욱 심화된다. ‘압살롬’의 일생은 실로 복수로 사무쳐 있다. 누이동생 다말을 욕보인 이복형 암논에게 잔인하게 복수했고 아버지에게 원한을 품고 공격하는 패륜아였다. 압살롬은 점차 야심을 드러내면서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 아비를 죽이려는 음모(陰謀)가 진행되고 있었다. 

압살롬은 계교(計巧)를 써서 아버지 다윗왕의 부하들을 헤브론으로 데려가 제사를 핑계로 자신을 왕으로 세우는 즉위식을 거행한다. 헤브론은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된 장소이며,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제단을 쌓은 장소이기도 하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춘 압살롬은 다윗의 최측근이었던 ‘아히도벨’을 포섭하여 반역을 일으켜 다윗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데 성공한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에 손 쓸 겨를도 없이 예루살렘성에서 도망하게 된다. 다윗은 자신이 낳은 셋째 자식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쫓김을 당한다. 그 후, 다윗은 군사들을 정비하고 최고의 장수 ‘요압’에게 압살롬과 싸우도록 지시한다. 다윗도 출전하고자 하나 부하들이 만류한다. 그 대신 다윗은 모든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 다윗의 신하요, 장군인 요압은 압살롬의 머리카락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아직 살아서 숨 쉬는 압살롬의 가슴에 창을 꽂는다. 아들 압살롬의 죽음을 확인한 다윗은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울부짖으며 비통해 한다.

여기서 우리는 압살롬의 비극에는 분명히 다윗의 책임도 있음을 본다. 다윗은 평소에 많은 아내들을 거느렸고 ‘밧세바’와의 불륜으로 자식들에게 악한 본이 되었기 때문이다. 압살롬 편에 서서 다윗을 패망 직전으로 몰아넣었던 ‘아히도벨’의 손녀가 바로 ‘밧세바’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윗도 뿌린 대로 거두는 하나님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건강한 가정을 세우는 핵심적 열쇠는 “칭찬이요, 용서”이다. “칭찬과 용서”는 아이들이 가정에서 배울 수 있는 “최고의 레슨”이다. 석학 이어령(李御寧, 1934~ )교수는 세상을 떠난 딸 이민아 목사가 어렸을 때, 잠자기 전에 아버지 방에 와서 “아빠!” 하고 부르면 “어! 들어가! 잘 자!” 하는 게 전부였고 한 번도 딸을 가슴에 끌어안고 축복해주지 못한 것을 크게 후회한다고 했다. 가슴 아파하는 노학자 이어령 교수에게서 젊은 시절 바쁜 일을 핑계로 자녀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베풀지 못했던 나 자신을 반추(反芻)해보게 된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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