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비사] 한국 교회 안에서 유지 되는 국민의 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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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1 독립운동 이후 한국 교회가 낸 개혁 건백서

3.1 독립운동은 일본 정부에게 통치 형태의 조정을 고려해야 할 만큼 충격을 주고 있었다. 제1대 총독을 지냈던 데라우찌는 3.1 운동이 일어났던 해 10월 20일에 급사했다. 저 1911년 105인 사건을 날조했던 당시 경무총감이자 헌병대장 아카시도 그해 10월 24일에 죽었다. 이때 한국 교회는 전체 인구 1% 남짓의 비율로 민족 대표 33인 중 16인을 내고 있었으며 전체 독립운동 중 20%의 참가와 그로 인해 80%의 핍박을 당했다. 한국 교회는 3.1 독립운동의 얼과 정신과 조직과 중추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때 한국의 선교사협의회는 신임총독 사이토에게 ‘개혁 건백서’를 냈다. “정치적인 문제의 경원, 종교적 자유, 도덕적 향상 및 교회 발전의 자유”를 위한 것이었다. 이 개혁 건백서가 받아들여졌다는 말은 없다. 개선된 것도 눈에 보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 건백서를 낼 정도로 “총독정치 변화”가 있었다. 그런 분위기였다.

이 ‘개혁 건백서’는 총 9개의 항목이었다. 가) 복음적 선교에 대해서, 나) 교육 사업에 대해서, 다) 의료 사업에 대하여, 라) 기독교 문서 사업에 대하여, 마) 교회의 재산 관리나 재정 문제에 대하여, 바) 도덕적 개혁, 사) 노동자의 복지를 증진하도록 법률을 제정할 것, 아) 기독교인으로서 구금된 정치범의 학대를 중지할 것, 자) 형무소의 교화 사업에 교회가 참여할 수 있도록 법을 제정할 것 등이다. 이 중 앞의 여섯 개 항목은 세부 항목이 열거되어 있다. 그중에서 바) 도덕적 개혁은 ‘공창과 아편, 모르핀 생산 매매의 금제’가 내용이었다.  

2. 3.1 독립운동에서 도덕적 혁신을 주창한 한국 교회

한국 교회는 3.1 독립운동에서 도덕적 개혁을 주창하고 있었다. 특히 공창과 아편, 모르핀 생산 매매 금제를 주장했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도덕적 개혁 노력은 그 역사가 이미 오래 되었다. 1913년 이승만 대한민국 건국대통령이 펴낸 [한국교회 핍박]에 보면 한국 교회 안에서 국민의 원기가 유지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거기 이미 한국 교회가 어떻게 도덕적 혁신으로 국민의 원기를 유지해 왔었는가를 길선주 목사의 예를 들어 말하고 있다. 인용한다.

“뉴욕 장로교 선교회에서 발간한 책에 의하면 평양 장대현교회 길선주 목사가 자기 교인들에게 권면하기를 담배는 대단히 해로운 것이니 자식들이 피우지 못하게 하고 담배회사에서 일도 하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 그러니 일본 순검들이 주의를 주기를 ‘담배는 정부에서 전매하는 것이니 담배를 반대하는 것은 곧 정부를 반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건이 실로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기독교가 윤리적인 풍토를 개선하고자 하는 일이 일본 관리들의 뜻과 이렇게 충돌하게 되는 것이다.”

3.1 독립운동 즈음 조선총독부 세입의 48%가 주초세였다는 사실은 심각하다. 일본 관리들의 뜻과 정면으로 맞서서 한국 교회는 이렇게 처음부터 도덕적 혁신의 길을 주도하고 있었다.

류금주 목사 <(총회인준)서울장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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