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터전인 도림교회(17)
한국기독실업인회(CBMC)
한국기독실업인회(CBMC)는 193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국제기구에 속해 있는 단체였다. 이만영 장로는 실업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1975년 CBMC에 가입하여 성경공부를 하는 것으로 그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CBMC는 당시 부활절 연합예배를 주도하였으며 찬송가 통합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찬송가 통합운동의 일환으로 CBMC에서 기금을 대어 지금의 찬송가공회가 조직되었다. 또한 조찬모임을 통한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CBMC 활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실업인으로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감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한국기독실업인회는 처음에는 아주 작게 시작하였지만 이만영 장로가 참여할 당시였던 1976년도에는 제1차 아시아대회를 개최하였으며, 이듬해인 1977년에는 제1회 세계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로 발전하였다. 그는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기여를 하며 CBMC를 주도하였다. 이렇게 CBMC는 발전을 거듭하면서 1980년대에는 남서울지회를 창립하여 초대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그는 이 모임에 지금까지 참여하고 있으며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 이만영 장로는 CBMC를 통해 인재 양성을 위한 발전기금을 조성하자는 운동에 적극 앞장 섰다. 비전스쿨, 리더십스쿨, 경영자스쿨, 경영대학워크숍 등을 전개하는데 필요한 발전기금 조성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CBMC의 활동은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미국 등지로 저변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CBMC는 2005년 제8차 세계대회를 한국에서 유치하는 것을 계기로 국제리더십센터를 한국에 설립하기로 결의하였는데 이만영 장로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건축위원장을 맡아서 당진에 만여 평의 부지를 마련하고 건축을 위한 모금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와 같이 그는 CBMC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이러한 CBMC에서의 활동에 대해서 김창성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렸다.
“일단 이만영 장로님은 좀 겸손한 분이세요. 잘 아시겠지만, 드러내 놓고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항상 중요한 key 역할을 하시면서도 드러내 놓고 안 하시니까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세요. 이것이 아마 성품상 그리고 본인이 워낙 겸손하시니까 앞에 나오시고 그런 건 없으세요. 그런데 중요한 역할을 하시는 때에는 항상 key를 잡고 계세요. 그것이 전체적으로 이만영 장로님에 대한 평가가 되겠습니다.”
이만영 장로는 1977년 서울 CBMC 협동총무를 맡기 시작하여 부회장까지 지내고, 남서울지회 창립회장을 거쳐 중앙회 회계, 서기, 감사, 부회장의 직책을 감당하면서 이러한 재정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크게 기여하면서도 중앙위원장의 직분은 맡지 않고 2010년부터 지금까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CBMC에서의 활동에 대해서 커다란 보람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부흥되고 발전된 것은 CBMC 여러분들이 각 교회의 책임적인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 영향이 컸던 게 사실입니다.”
정봉덕 장로
<염천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