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반말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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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의 대화는 소리가 아니고 뜻으로 하는 것이기에 가장 편하지만 사람들 사이에는 문화에 따른 격식이 있다. 며칠 전 대한민국 군대 안에서 장교와 하사관 사이에 ‘반말’로 인한 다툼이 있음이 신문에 났다. 군대만이 아니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또 아는 사람들 사이에도 반말로 인한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반말은 일단 친근감의 표시인데도 인간관계에서의 서열을 표시하는 수단이기도 해서 갈등을 일으킨다. 모든 민족들의 언어에 친밀도나 상하관계를 나타내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지만 우리말처럼 동사에 ‘시’를 붙이는 경어에서부터 반말 및 ‘해라’ 형식으로 내려가며 다양하게 변화하는 예는 별로 없을 것이다. 일컬어 동방예의지국이라 했으니.

재미있는 것은 전라도나 경상도 지방에서는 형님이나 삼촌 같은 윗사람에게 거침없이 반말을 던지고 내 고향 전남 쪽에서는 형이나 누나를 ‘자네’라 부르기도 하는데 오직 다정하게 들릴 뿐이다. 경상도로 시집간 타 지역 여인이 남편 네 식구들이 어머니, 할머니에게 ‘이랬나’, ‘저랬다’ 하고 말을 놓는데 놀랐다는 얘기도 있다. 부부간에는 통상 아내는 경어를, 남편은 반말을 주로 쓰고 서울 토박이 집안에서는 서로 경어를 쓰는 것을 많이 본다. 두 사람만 있을 때도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졸병생활을 하던 60년대 군대에서는 장교나 하사관이 일반 사병을 불러 무엇을 시킬 때 반말이나 ‘해라’를 썼고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때도 초급장교들이 나이 어리고 영내근무를 하는 하사들에게는 거의 사병들과 다름 없이 대했지만 3-40대로 영외근무를 하는 중·상사들에게는 원칙적으로 경어를 사용했다.

육군참모총장이 원사(옛날에는 특무상사 또는 직책으로 인사계)들과 화상대화를 하면서 갓 임관해서 부임한 소위가 반말하는 것을 용납하라는 뜻으로 말한 데 대해 원사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고발한 사건은 두 가지 점에서 많이 한심스럽다. 참모총장이면 이런 일은 각 부대장이 훈시로 다스리도록 하면서 직접 나서지는 말았어야 하고, 원사들은 불만스러운 일이 있으면 내부에서 호소할 일이지 그게 무슨 인권문제라고 단체행동을 하는가. 어느 소위가 자기에게 반말로 무슨 지시를 하면 이를 충실히 이행하여 신뢰를 쌓고 나서 개인적인 대화로 나이 대접을 해달라고 요구하든지 하면 되는데.
군대 내 인권존중의 경향이 상명하복의 기강을 이완시켜서는 안 된다. 만사가 그렇듯이 말보다 뜻이 중요하다. 80년대 말 소위 정치의 민주화가 되면서 대통령을 부를 때 ‘각하’라는 호칭을 떼고 ‘대통령님’ 하기로 했을 때 청와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매우 불편해 했다. 지금 각하라는 말은 없어졌지만 오히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불평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Mr. President도 여러 가지여서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 같은 사람이 나와 미국의 민주주의를 망신스럽게 만들고 떠났다.
목사님들 가운데 회중에게 반말을 던지며 열정적으로 설교하여 많은 영혼을 인도한 분들이 있다. 유능한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이 있으면 부대 안에 반말 시비는 나올 수가 없다. 군대에 층층이 계급이 있고 구성원 상호간에 경례 형식이 정해져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생명을 걸어야 하는 군대의 임무가 철저한 내부적 규율과 질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격렬한 경기에서 존댓말은 소용없다. 하물며 전장에서랴.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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