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 대통령(1917-1963)이 쓴 《용기 있는 사람들(Profiles in Courage)》이라는 책에서 미국 역사상 용기 있는 인물로 추켜세운 인물 중에 매사추세츠주 출신 상원의원이었던 《다니엘 웹스터》란 사람이 들어 있다.
미국에서 노예가 해방되기 전, 노예제도를 주장하는 남부와 그것의 폐지를 주장하는 북부와의 사이에 의견 상충으로 인해 대충돌이 일촉즉발 상황에 처해 있던 때였다. 당시 북부에는 상공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남부에는 지주들과 그들의 노예들이 많았는데 피차간의 갈등과 불만은 날이 갈수록 증폭되어 북부는 공화당을, 남부는 민주당을 조직하여 서로 대립하다가 1860년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급기야는 남부의 여러 주가 미합중국에서 이탈하기에 이른다.
링컨 대통령은 미합중국을 통일하겠다는 결의를 밝히고 1861년 드디어 ‘남북전쟁’을 벌여 5년간의 격전 끝에 1865년, 이 무력전쟁은 북쪽의 승리로 끝나면서 헌법이 개정되고 자유노동과 보호무역을 국시(國是)로 하는 공화국의 기초가 확립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미합중국의 통일과 노예해방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야기의 주인공 《다니엘 웹스터》 상원의원이 등장하는 것은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10년 전의 상황이었다. 미동부의 매서추세츠州 출신으로 뛰어난 정치가요, 유명한 웅변가인 《웹스터》는 고심, 또 고심 끝에 상원에서 역사적인 연설을 하게 된다. 적극적인 노예제도 폐지론자였던 《웹스터》는 남북이 극단적으로 대립해서 서로를 공격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틀림없이 남북 간에 커다란 내란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며 만약 그렇게 되면 미합중국은 남과 북이 모두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자, 미합중국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남북 양쪽의 주장을 절충해야 한다는 내용을 의회에서 연설함으로써 양쪽을 설득하려 했던 것이다.
그의 연설을 요약하면, 콜롬비아 지역에서는 노예무역을 금지하되, 노예제도폐지론에 대하여 시기상조론을 내세웠다. 따라서 탈주하여 북부로 도망했다가 붙잡힌 노예들은 다시 그들의 주인들 밑으로 되돌아가도록 보장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당시 노예제도 폐지론이 확산되던 추세에 있던 북부지역에서 자신의 연설의 파장이 얼마나 엄청난 파고를 몰고 오리라는 것을 예견하면서도 그 길만이 미합중국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확신하였다.
그의 주장은 어찌 보면 노예제도 존속에 반대하여 온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는 결과가 되는 것이요, 지난 20년간 공고히 다져온 그의 정치적인 발판을 송두리째 잃을 뿐 아니라 대권을 위한 그의 준비와 노력도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이었다. 다만 그는 미합중국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역사적인 연설을 감행한 것이었다.
그의 연설 후, 반향의 물결은 예상보다 크고 거셌다. 언론은 그를 ‘변절자’로, 또는 ‘자유의 근본토대를 배반한 사람’으로까지 혹평을 하였다. 사정없이 쏟아지는 비난 속에서 《웹스터》는 일언반구 대꾸가 없었다. 그에게 즉각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가까운 그의 친구를 향하여 “나는 눈이 내리고 있는 동안에는 마당의 눈을 쓸지 않는다”라는 명언을 남기게 된다.
그의 연설 덕분에 남부의 여러 주는 무장을 해제하게 되었고 전쟁의 발발을 10년간이나 억제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됨으로써 북부의 여러 주는 인구, 투표권, 생산력, 철도 등에 있어서 남부에 대하여 그들의 우위를 크게 증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훗날 남북이 하나가 되는 인프라를 구축할 수가 있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상식으로 통하는 우리의 정치문화에 대하여 《다니엘 웹스터》의 ‘침묵의 용기’가 시사해 주는 바가 매우 크다. 그에게서 우리는 개인보다 국가를 먼저 생각할 줄 아는 큰 그릇으로서의 정치적인 모형과 틀을 보게 된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