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를 딸 수 없는 겨울이 있는 지역에선 비축 심리가 있다. ‘월동준비’인 것이다. 이른바 구두쇠 심리다. 아낀다는 것은 미덕이다. 건강도 아끼고 시간도 아끼고 물질도 아낀다. 사람을 아끼는 것이 최고이다. 여기에선 물질을 아끼는 것을 생각해 본다.
구두쇠의 종류다. ①비축형(備蓄型) ②규범형(規範型) ③절검형(節儉型)으로 나눈 것은 이규태 씨의 분류다. 그가 예시한 실례를 보자. ①조선조 태종 때 대제학을 20년이나 맡았던 변계량(卞季良)이 비축형 구두쇠다. 작은 물건도 빌려주는 일이 없고 과일을 잘라 먹어도 표시를 해두어 식구들도 못 먹게 했다. 손님과 술잔을 나누어도 그 잔수를 헤아려 더 이상 못 마시게 했다. 임금이나 신하들이 음식과 안주감을 주어도 차곡차곡 쌓아두다가 변질되어 냄새가 나고 구더기가 생기기도 했지만, 하인들에겐 한 톨도 나누어 주지 않았다. 비축하고 수전(守錢)하되 그것의 효용까지 무시하는 자기중심적 비축이었다. 겨울이 있고 실농(失農)하면 배를 곯아야 하니까 안전보장 수단으로 비축을 하게 된 것이다. 굶어 죽거나 얼어 죽지 않으려는 생존 본능의 모습이라 하겠다.
②비축형의 정반대로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 욕망을 극소화하고 의식주의 최소한 필요만 챙기는 절약이다. 경상도 관찰사를 지냈고 호조와 이조판서를 지낸 중종 때의 학자 김정국(金正國)이 그 대표이다. “내가 20년을 빈곤하게 사는 동안 두어 칸집에 두어 이랑 전답을 갈고 겨울 솜옷과 여름 베옷이 각 두 벌씩 있는데 아직도 눕고서 남을 땅이 있다. 신변에는 여벌 옷이 있었으며 주발 밑바닥엔 남은 밥이 있었다. 이 세 가지 남은 것을 가지고 한세상 편하게 살았다. 비록 넓은 집 천 칸과 옥 같은 곡식 만 섬과 비단옷 백 벌을 보아도 썩은 쥐같이 여겼고, 이 한 몸 살아가는데 여유가 있었다.
그 밖에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으로 ①책 한시렁 ②거문고 한 벌 ③신 한 켤레 ④잠을 청할 베게 하나 ⑤환기용 창문 하나 ⑥햇볕 쬐일 툇마루 하나 ⑦차(茶) 다릴 화로 하나 ⑧늙은 몸 부축할 지팡이 하나 ⑨봄 경치 찾아다닐 나귀 한 마리, 늙은 몸이 살아가는데 이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나. 이런 나를 가리켜 누가 불쌍한 사람이라 하겠는가?” 한국 선비들의 기본 조건이요, 논리다. 태조 때 정승인 유관(柳寬)은 장마철에 비 새는 방에서 우산을 받고 살았고 성종 때 정승인 손순효(孫舜孝)는 귀한 손님이 왔는데 박주 한 잔에 오이 쪽 하나로 술대접을 했으며 중종 때 판서 홍귀달은 남산에 겨우 혼자 발 뻗고 누우면 가득 차는 단칸 헛가리 집에서 살았다. 정부의 고위 지도자들이 이렇게 절검(節儉)을 하는데 어떻게 그 아래 사람이나 백성들이 낭비를 할 수 있었겠나. ‘上濁下不淨’(윗물이 흐르면 아랫물이 맑을 수 없다)이나 “源潔則淸流, 形端則影直”(물 근원이 깨끗하면 흐르는 물도 맑고, 본체가 바로 서면 그림자도 곧게 선다)이 이를 증명해 준다.
목천과 연기지방의 현감은 밥상에 밥과 국과 간장 외에 4가지 반찬 이상은 못하도록 제도화하기도 했다. ③절검형의 대표는 갑신정변 때 행동대원으로 활동했던 이규완(李圭完)이 있다. 우리 민족의 가치체계로 보편화된 구두쇠 기질이다. 그는 도지사격인 강원도와 함경도 장관을 지냈지만, 제복 한 벌 외에 여름에는 중이 적삼, 겨울에는 무명옷이 상복이었고 두루마기는 넝마 같았다. 일할 때는 물감들인 옷을 입었기에 중국인 고용인으로 오인받기 일쑤였다. 구두 한 켤레로 30년을 기워가며 신었고 이것도 제복 입을 때만 신었다. 평상시에는 짚신을 신었는데 한쪽이 헤지면 그쪽만 바꾸어 신었기에 늘 짝신으로 신었다. 며느리에게도 구두쇠 교육을 시켰다. 빨래할 때는 집에서 빨고 빤 물은 모아두었다가 거름에 섞어서 밭에 주든지 퇴비에 끼얹도록 시켰다. 식구들 중 굵은 장작으로 불을 때면 타일렀다. “나무를 살 때부터 손질하여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나 여부를 살피면서 사야 한다. 그래서 용재(用材)로 쓸만한 것은 따로 챙겨두고 후에 가느다란 것은 농기구 자루로 쓰도록 하며 싸리나무는 묶어 빗자루로 쓰다가 다 닳으면 그때에 때도록 하라”는 식이었다. 화장실(뒷간)에 갈 때도 빈손으로 가지 말고 용변 시간에도 노끈을 꼬거나 어망 얽는 일을 하라고 타일렀다. 아이들이 다 쓰고 난 잡기장을 갖다가 자신의 붓글씨 연습장으로 재사용하기도 했다. 그대로 따라 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렇게 아껴 쓰는 정신은 본받아야 겠다.
김형태 박사
<한국교육자선교회 이사장•더드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