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선후배와 동기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바쁘게 지내다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여서 서로가 모두 반가웠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문득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희들 통장에는 얼마씩이나 들어있냐?” 난데없는 통장 이야기에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후배들은 혹시나 그 선배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기 위해서 그러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배는 빙그레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말하는 통장은 은행통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덕(德)통장을 말하는거야!” 그러나 후배들은 아직도 선배가 말하는 통장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자 다시 말했습니다. “어허 이 사람들! 모두가 은행통장에 돈 쌓아두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덕(德)을 쌓는 일에는 무관심이군. 사람이 어찌 돈과 밥으로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 세상에 살면서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덕을 쌓고 복을 지어야 사람답게 사는 길이 되는데 말이야…” 그때서야 후배들은 하나 둘 선배의 이야기를 알아들었습니다.
“은행통장이야 죽을 때 가져가지도 못하는 것이니 죽어서도 가져갈 수 있는 통장을 하루빨리 만들어 두시라 이 말씀이야.” 선배의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신파조의 말투로 인해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한바탕 웃음바다 속에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날 모임 이후 며칠 동안 ‘덕 통장’이란 말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더러는 좋은 마음으로 베풀고 뭔가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고 해도 어찌 보면 그것은 진정 남을 위해서만 한 일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채우기 위한 것도 많았으리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통장 가운데서도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하나하나 채워갈 수 있고 이 세상을 떠난 뒤에까지 오래오래 남아있을 덕(德)통장을 가득 채우는 삶을 살아가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고인의 별세를 애도하며 유작으로 남겨진 칼럼은 당분간 게재할 예정입니다.
– 편집자주-
김철수 장로
<작가 • 함평은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