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그날!
여전히 손양원 목사 기념관에 사람들이 몰려왔다. 예약한 사람들 그리고 순례 차 온 사람, 갑자기 여수에 왔다가 들렀던 사람 등등 이유와 발걸음이 다양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을 접하고 안내하면서 양분하여 볼 수 있었다. 하나는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영성으로 순례하는 믿음의 여정이요, 다른 하나는 관광 코스이거나 그냥 구경하러 온 부류였다. 물론 섣부른 판단인데, 판단의 기준은 기념관 내의 다짐과 결단의 방에서 결정되었다. 그 방은 아무것도 없이 십자가만 있는데, 기념관을 보고 나서 다짐과 결단을 하는 주님과의 시간을 갖는 방이었다. 그곳에서 각양각색의 반응이 나왔다. “어, 아무것도 없네!”부터, 문 앞에서 돌아가는 사람, 떠들고 노는 아이, 무관심으로 스쳐지나가는 이들… 이와 반대로, 오랫동안 기도하는 사람, 그곳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 옷깃을 여미고 들어와 엎드리는 사람… 이 글을 읽는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그러던 어느 날, 예약한 어느 교회에서 안내를 받으면서 빨리 해달라고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속도를 내어 안내하고 보냈다. 속으로는 “당신들은 은혜받기는 틀렸소, 겸손해야 은혜를 받는 것인데…” 하였다. 그리고 부교역자로 유초등 공과를 준비하는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너는 하찮은 박 넝쿨도 아끼면서 저 성읍에는 좌우를 분간하지 못하는 12만의 생명이 있는데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번개 같은 깨달음이 왔다. 수박 겉핥기로 보고 가는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하나님의 마음은 다르셨다. 은혜를 모르고 그저 왔다 가는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불쌍한 영혼에게 주의 사랑과 한없는 용서가 무언지 가르쳐 알게 하라고 보내신 사람들이었는데 판단하고 정죄하면서 보냈으니 이 죄를 어찌해야 할꼬…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을 부르시고 하나님나라를 가르치시고 고치시며 온전케 하신 주 예수님. 그러나 이와 상반되게 정죄하고 성전에 얼씬도 못하게 하고, 부정해지므로 접촉하기를 싫어했던 당대 지도자들.
목회를 하면서 요나와 같은 모습을 발견하고 엎드릴 때가 있다. 은연중에 마음이 그렇게 변하였음을 절감하기 때문이었다. 코로나 시대에 비대면 거리두기 그리고 배달주문 등으로 사람과 부대끼며 사는 정이 급격히 식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감염자를 혐오하고 교회를 지탄하며 발생 지역을 증오하는 문화가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고 있다. 기억하자!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아끼는 박 넝쿨 보다 훨씬 가치 있는 귀한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그러므로 거리두기는 하되 봄볕과 같은 따스함은 잃지 말자. 사람과의 거리는 적당하게 그러나 주님과의 거리는 좁히고 가까이 하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온기를 잃어가는 이 시대 코로나로 인하여 제약이 있지만 우리는 노래해야 한다. 요나가 만나고 깨달은 사랑의 하나님을 그리고 끝까지 사랑하사 죄인 된 우리를 구하신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오늘 내가 부를 요나의 노래는 있는가? 코로나로 얼어붙은 이 땅 여기저기에서 요나가 부른 사랑의 노래가 들리기를 기대한다. 지금 우리가 부를 노래이다.
임용한 목사
·애양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