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지성] 사법부의 파동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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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곧 여느 다른 관료화와 마찬가지로 그 조직을 통해서 그것이 무슨 비공식적 목적이건 간에 그들이 추구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동원할 수 있는 조직적 힘을 가진 집단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과시한다. 이 경우는 사법부의 영향력 확대와 직원들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사법부의 수장이 직접 나섰다고 할 수 있는데 첫 번째 사건은 해외 대사관에 법관들을 더 많이 파견할 수 있도록 행정부 특히 외교부에게 압력을 가하는 일과 대법원에 넘쳐나는 상고 건수를 좀 덜어주려면 고등법원과 대법원 사이에 또 하나의 상고법원을 설치하는 것이 필요한데 행정부가 이 문제를 풀어달라는 것이다. 

또 두 번째의 사건은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자기를 임명해서 비준까지 시켜준 행정부와 여당과의 관계를 ‘조직’을 위해서 원만히 유지하고 싶은 심리가 작용했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이 모두 사법부 수뇌의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였다고 변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집단적 또는 조직의 비공식적 수요가 생겼을 경우에도 그 해결책을 이런 식의 불법적이고 당당하지 못한 수단을 택했다는 사실은 얼마나 그들이 많이 관료화가 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위 두 가지의 사건들은 설혹 사법부가 아닌 행정부의 기관의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는데 하물며 정치적 중립성과 업무의 독립성을 생명으로 여겨야 할 사법부 그것도 그 수장이 이 모든 사건의 당사자로 얽혀 있다는 사실은 실로 개탄할 일이다. 그러면 왜 우리 사법부는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러한 사건이 두 번씩이나 발생했는가. 

한 마디로 우리나라 대법원장은 다른 나라의 사법부 수장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모든 법관의 인사를 대법원장이 행사한다는 사실이다. 형식적인 인사권 행사가 아닌 실질적 행사 즉, 임명, 전보, 그리고 승진까지 모두 대법원장이 행사한다. 또 수명의 대법관을 임명하는 엄청난 힘까지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런 대법원장이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면 그 휘하에서 많은 젊고 야심적인 법관들이라면 대법원장에게 밉보이도록 어리석게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 자체가 사법부를 하나의 거대한 이익집단으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문제는 이런 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한 위와 같은 사건은 어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처럼 외부인사의 참여없이 사법부의 수장이 모든 법관에 대한 권한을 가진 나라는 따지고 보면 일본 말고는 우리가 유일하다. 우리는 그동안 그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이나 해 봤는지 알 수 없다. 물론 우리의 제도가 36년간의 일제강점기 동안에 크고 자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해 있는 반면에 다른 서구의 제도에는 낯설어서 마치 이것만이 좋은 근대화를 위한 제도인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일본의 사법제도의 근본적 철학이 근대화 보다는 명치유신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민주국가를 세우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실추되었던 천황의 위상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그의 권력을 강화하고 신하로서 어떻게 하면 천황을 잘 모실 수 있을까가 주된 목적으로 1865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에서 76년 전에 해방되었고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세운지 73년이 되었으며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진입해 있으면서도 일제의 이러한 비민주적 잔재를 개선하면 마치 사회가 커다란 혼란에나 빠지는 것처럼 착각하여 그것만이 우리에게 잘 맞는 제도인 것처럼 제도개혁을 주저해 온 것은 국가적 손실이요 국민적 수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창현 장로

<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펨부록)정치학 교수 · 전 중앙인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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