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경영] 살아있을 때가 기회다

Google+ LinkedIn Katalk +

아줌마는 50대 후반이다. 내 땅 한 뼘 없이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너무 힘에 부쳐서 세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서울로 올라 왔다. 그렇게 시작한 서울 살이가 너무 힘겨웠다. 20년이 넘게 남의 집 돕는 것으로 집안을 이끌어 오고 있다. 억척스레 일했다. 아이들을 중 고등학교에 보내고 또 대학에 보내면서 손발이 다 갈라지고 피가 나도 반창고를 붙여가며 식당일도 하고 온갖 궂은 일을 다 했다. 그러는 동안 남편은 변변한 수입도 없었다. 

아내한테 손 벌려 담배 값도 술값도 뜯어 갔다. 원망도 하고 싸움도 했지만 남편이고 애들의 아버지니 어쩌겠나 체념도 했다. 아이들도 자립심이 강해서 나름대로 결혼도 하고 자립도 했다. 그런데 남편이 그만 쓰러져서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게 되었다. 하루 종일 일 나간 아내만 기다리고 누워 있다. 아줌마는 요즘 이런 남편이라도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고 한다. 아침에 밥 차려 머리맡에 놓아두고 나오면 복지관에서 자원 봉사자가 와서 밥 먹이고 간다. 하루 종일 누워 있다. 움직이지 못하니까 나오면서 어두워지면 전깃불을 켤 수 있도록 긴 줄을 달아놓고 나온다. 그래서 어두워 집에 돌아가도 집에 환히 불이 켜져 있어 좋다고 했다. “여보, 나 왔어. 잘 있었어? 밥은 먹었어?” 그러면 남편은 아기가 되어 빙그레 웃으며 “왔어?” 하며 맞아준다. 아줌마는 그렇게라도 자기를 반겨주는 남편이 고맙다. “이렇게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 젊었을 때 그렇게 속 썩이고 제 멋대로 였던 남편이었지만 아이들 다 떠나고 둘만 남은 지금, 이렇게라도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고맙다고 했다. 일은 해야 하고 너무 힘들면 투정도 하고 바가지도 긁지만 이젠 빙그레 웃으면서 “알았어. 수고했어. 미안해.” 그런다. 그러면 마음도 풀어진다. 참 이상하다. 남편이 힘들게 할 땐 정말 원수같이 미웠는데 오히려 지금은 측은하고 귀하게 여겨지고 사랑스럽다. 남편의 마음이 아마 순해져서 그런가보다.  

많은 부부들이 심한 갈등을 겪다가도 한순간에 풀어지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 풀어지는 고리가 무엇인지는 부부마다 다를 것이다. 8개월간 한집에서 남남처럼 말도 안 섞고 지내다가도 단 한 번의 강의를 듣고 마음 바꾸어서 사이가 좋아진 경우도 보았고  두 내외가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마지막으로 상담 한번 받아 보자고 왔다가 화해하고 나가는 일도 있다. 정말이지 부부란 게 참으로 묘하다. 그렇게 원수처럼 한순간도 보고 싶지 않았는데 사이가 좋아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함께 손잡고 아이 낳고 키워가며 살아지는 것이다. 지금 갈등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가? 정말 화해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자기 의견은 좀 다  버리고 상대방의 마음에 귀를 가만히 기울여 보자. 그러면 상대방의 마음이 보일 것이고 그 마음을 어루만져 위로와 배려를 하게 된다. 병들어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을 때 그때 아내에게 고맙다고 말할 것이 아니다. 건강할 때 내 힘으로 할 수 있을 때 표현하자. 살아있을 때만이 내가 잘해줄 수 있는 기회다. 아줌마가 그래도 남편을 고맙게 여기고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것처럼 배우자가 살아 있을 때가 기회다. 배우자가 살아 있음에 감사하자. 그리고 사랑을 표현해 보자.

김영숙 권사

• (사)가정문화원 원장

• 반포교회 권사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