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한국을 끔찍이도 사랑한 「펄 벅」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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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케네디 대통령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작가들을 백악관에 초청해 행사를 마련했다. 대통령은 「펄 벅(Pearl S. Buck, 1892~1973)」 여사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안부를 물었고 펄 벅 여사는 한국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케네디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한국은 골치 아픈 나라인데 내 생각에는 미군을 한국에서 철수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비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냥 옛날처럼 일본이 한국을 통제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펄 벅 여사는 잠시 충격에 말을 잃었다가 이내 곧 정색하며 대답했다. “대통령의 위치에서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일본을 싫어하는지도 모르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건 마치 미국이 영국의 지배를 받던 그 때로 돌아가는 소리와 같습니다.”

펄 벅 여사는《대지(The Good Earth)》를 집필한 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중국에서 살아왔던 영향으로 미국인이지만 정체성은 반 중국화 된 사람이고 그만큼 중국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사실 중국 못지않게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한국인들은 펄 벅 여사가 한국의 독립을 위해 애썼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1920년 난징대학(南京大學)에서 여운형(呂運亨, 1886~1947), 엄항섭(嚴恒燮, 1898~1962) 등 한국 독립운동가의 자녀를 가르쳤고 중국신문에 「한국인은 마땅히 자치해야 한다」는 논설을 쓰기도 했으며 1941년에는 미국에서 「동서협회」를 조직해서 유일한(柳一韓, 1895~1971) 박사와 이승만(李承晩, 1875~1965) 박사를 초청해 강연하도록 자리를 마련하였으며 본인 역시 《한국을 알자: 2500만의 잊혀진 친구》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다. 

그리고 “한국의 밤” 행사를 열어 《아리랑》을 불렀고 한국인이 연합국의 “카이로 선언”을 믿고 가만히 있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놀라운 애착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한국에 대한 애착이 생긴 계기는 유일한 회장과의 만남이 그 시작이었다고 한다. 미국의 정보기관인 OSS조직을 통해 유일한 회장을 만난 펄 벅 여사는 그를 통해 한국 독립운동가에게 큰 감화를 받았고 그 정신적 뿌리를 확인하고자 공식적으로 한국을 찾게 된다. 

펄 벅 여사가 1960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서 서울 진명여고 강당인 삼일당(三一堂)에서 연설을 했는데 당시 대학 1학년이던 나도 친구 몇 사람과 함께 강연현장에 참석했었다. 펄 벅 여사의 영어연설을 당시 중앙대학교 영문과 정인섭(鄭寅燮, 1905~1983) 교수가 유려한 언변으로 명쾌한 통역을 했던 기억이 난다.  

펄 벅 여사는 이어서 한국농촌을 여행하던 중, 경주를 방문하여 소달구지에 볏단을 싣고 농부 자신도 지게에 볏단을 짊어진 채, 걸어가는 모습을 보자 신기하여 농부에게 물었다. “소달구지에 타지도 않고 왜 힘들게 짐을 지고 갑니까?” “오늘 우리 소가 일을 많이 해서 고생했으니까 제가 짐을 나눠지고 갑니다.” 후에 미국으로 돌아간 펄 벅은 이 모습을 회고하며 “세상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소의 짐을 덜어주고자 자신의 지게에 볏단을 한 짐 지고 소와 함께 귀가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또 한 번은 농촌의 어느 가정에 늦게까지 따지 않은 감 10여 개를 보고서 펄 벅 여사는 동행한 기자에게 “저 감은 왜 따지 않고 있는 거죠?” “저건 겨울에 새들 먹으라고 남겨둔 ‘까치밥’입니다.” 기자의 대답을 들은 그녀는 탄성을 지르며 놀라워했다. “제가 한국에서 보고자 했던 것은 고적이나 왕릉이 아니었어요. 이거 하나만으로 한국에 잘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한국에 펄 벅재단을 세우고 유일한 회장에게 부지를 기증받아 「소사희망원」을 세워 한국에 있는 혼혈아들을 돌보며 한국여성의 인권 향상을 위해 지극한 애정을 표했으며 동서양의 벽을 허물기 위해 애를 썼던 것이다. 

한국을 위해 헌신했던 이런 외국인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이들은 모두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천사들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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