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地名)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만 하더라도 위례성, 양주, 한성, 한양 등으로 변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고대 애굽의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중심 도시는 ‘와세트(Waset)’였다. ‘왕의 홀이 있는 도시’ 즉 왕도라는 뜻이다. 그곳을 구약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노(No)’ 또는 ‘노 아몬(No Amon)’이라고 불렀다. 그 후 애굽을 정복한 희랍 사람들은 ‘테베’라고 이름을 바꿨고, 그 이름으로 세계에 알려져 내려왔다. 오늘날은 ‘룩소르(Luxor)’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룩소르는 거의 천만 평에 달하는 광대한 지역으로, 다 둘러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어 고대 애굽 문명의 보고요, 천장이 없는 박물관이다.
카이로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남쪽으로 550km를 날아가면 룩소르 공항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으로 가는 것도 어렵지 않아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세계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아가는 역사적 유적지 중의 하나이다.
룩소르의 북부 지역을 카르나크(Karnak)라고 부른다. 그곳은 고대 신전들이 밀집되어있는 ‘신전 구역’이다. 그곳에 남아있는 많은 신전들 중에 가장 유명하고 규모가 큰 것은 ‘카르나크의 아몬 신전’이다. 고대 애굽의 최고신 아몬(=아문)을 위한 신전으로 보통 ‘카르나크 대신전’(The Great Temple of Karnak)이라고 부른다. 이 대신전은 그곳에서만 가장 큰 신전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최대 규모의 신전으로 알려져 있다. 신전 안에 있는 대석주실에는 높이가 22m에 이르는 134개의 석주가 16줄로 도열해 있어 보는 사람을 압도하며 감탄이 절로 나온다. (대석주실은 여러 편의 영화에도 등장했다.)
우리가 카르나크 신전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곳이 세계에서 가장 큰 신전이라는 이유만이 아니다. 신전 벽면에 기록된 상형 문자와 부조로 조각되어있는 ‘바로’(=애굽왕이라는 뜻)가 구약성경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등장하는 ‘바로’는 쇼솅크(Shoshenq, 주전 930년대~910년대)라고 불리는 애굽 왕이다. 구약성경에는 시삭(Shishak)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카르나크 대신전 벽면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시삭’ 왕이 병거 1200대와 마병 6만 명을 동원하여 이스라엘 지역과 요단 강 동편 지역을 원정했던 전승 기록이다. 적의 머리털을 붙잡고 있는 시삭 왕의 모습도 부조되어 있고, 원정에서 애굽 군대가 초토화시킨 이스라엘의 도성들의 이름도 상세히 명기되어 있어, 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구약성경을 보면 시삭 왕은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이 죽은 후 이스라엘 왕국이 남과 북으로 분열하는 데도 깊이 관여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원래 애굽인이 아니었다. 리비아 지역의 귀족 출신이었다. 그는 애굽 왕에게 충성해서 군사령관까지 오르게 되었고, 야심 많은 그는 자기의 아들을 애굽 공주와 결혼시켜 왕실의 일원이 되었다. 그런데 당시 애굽 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시삭은 왕위를 주장하고 결국 왕위에까지 오르는데 성공했다. 왕위에 오른 시삭은 새로운 왕조를 열었다. 고대 애굽 역사의 22대 왕조이다. 시삭이 왕위에 올랐을 때 애굽의 황금기는 지나고, 앗수르 제국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때였다. 이러한 상황을 좌시할 시삭 왕이 아니었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